2021/07/17 9

신의 사랑

희망과 절망이라는 시소를 타지 말고 희망과 절망 모두를 다 놓아버리자. 뭔가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기대를 믿지 말고 차라리,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인 신의 사랑을 믿자.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다 함은 절대자인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기대를 믿고 자신의 기대를 생각하며 뭔가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음이다. 내 판단이 만인 공통 또는 만국 공통의 기준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아가 내 판단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신의 사랑을 기준으로 삼자. 조건부 사랑을 믿는 조건부 믿음이 아닌, 무조건의 사랑인 신의 사랑을 깨달아 무조건의 사랑과 무조건의 믿음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에게도 판단 기준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도 판단 기준이 있음을 스스로 기꺼이..

깨달음의 서 2021.07.17

노자와 공자

배움(學)을 강조한 공자와는 달리 노자는 도(道)를 강조했다. 도덕경 48장에서 그는, 배움은 날마다 보태는 것이나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만을 얘기하고 있음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무언가를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기규정 (또는 고정관념)을 스스로 자각해서 이를 없애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자신 내면에 있는 자기규정을 자각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방면에 선각자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젊어서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나이가 더 들어서는 덜어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노자 - 도덕경 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

깨달음의 서 2021.07.17

생각은 본능의 하인이다.

생각으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의지를 버려야 한다. 생각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하거나 생각으로 굳은 믿음을 갖고자 하는 등 생각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단지 오감의 몸종이며 본능의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그것을 먹으러 어디로 갈까? 등을 정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생각이다. 그 이상을 생각에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말라. 그러면 생각은 고민하는 체하면서 거꾸로 우리를 자신의 하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제대로 된 답도 내주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용히 내면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무언가 느낌 즉 영감이 오기를 기다려 보라.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느낌을 기다려라. 영감이 올 것이다.

깨달음의 서 2021.07.17

생사가 모두 분별이다?

생사가 모두 분별 (또는 분별의식)인 것이 아니라, 생사 즉 삶과 죽음이란 실존이다. 생사가 관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생사 자체가 아니라 생사에 대한 판단이 곧 분별일 뿐이다. 삶은 좋고 바람직하며, 죽음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고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 등이 바로 분별이요 분별의식이다. 그런데 많은 선각자들은 생사가 모두 분별이라고 얘기한다. 이는 그들의 내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여전히 남아있어, 이를 스스로 외면하기 위한 자기최면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엄연한 현실이며 실존이지 이게 어찌 분별이라는 말인가? 분별이라면 삶과 죽음이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이래 삶과 죽음의 모습이 지금과 달..

깨달음의 서 2021.07.17

아상我相과 법상法相

아상이란 주관적 판단을 말하며 법상이란 객관적 판단을 말하나, 아상과 법상 모두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법상이란 객관적인 진리가 외부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는 것일 뿐, 아상이든 법상이든 모두 각자의 내면에 있는 주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객관이란 결국 주관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생각하고 믿는 바가 바로 객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주관 속에서 어떤 것을 객관이라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판단과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저마다 주관적인 생각 속에 있는, 객관에 대한 관념이 서로 같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착각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

깨달음의 서 2021.07.17

완벽한 세상

우리가 완전 또는 완벽하다고 말할 때 그 대상은, 어느 한 부분 즉 개체가 아니라 전체를 일컫는다. 전체적으로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지 부분적으로 개체가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해본다면 부분적으로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다른 부분은 불완전함을 뜻한다. 고로 이 세상이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얘기는, 부분적으로 즉 개인에 따라서는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완전하고 완벽한 전체 즉 엄마 품에 안겨있는 갓난아기인 셈이다. 완전한 전체 안에서 완전한 전체를 향해 가는, 불완전할 때도 있는 개체이자 부분일 따름이다.

깨달음의 서 2021.07.17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라는 말은 얼핏 보면 그 자체로 모순인 것도 같지만, 형이상학적 우주든 물질 우주든 모든 게 내 안에, 즉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유형의 물질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무형인 인간 영혼이 먼저 창조되었다. 유형의 물질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모든 존재는 무형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즉 유형의 물질 우주 이전에 무형의 형이상학적 우주가 있었던 것이며, 영적 세계는 지금도 무형의 형이상학적 우주 그대로이다. 따라서 무형의 영적 세계를 유형의 물적 세계에 비추어 유추하고 상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진화론과 창조론이다. 진화론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창조론조차도 우주의 창조를 얘기하면서 유형의 우주를 상정하..

깨달음의 서 202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