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자각의 힘

신타나몽해 2021. 12. 1. 07:17

자각의 힘


우리는 신이 될 수 있거나 또는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신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능력과 본질에 있어서 인간은, 신의 프랙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프랙탈이 뜻하는 바처럼 눈에 보이는 형상이 서로 닮은 게 아니라, 내면적인 능력이나 본질에 있어서 닮은꼴입니다.

또한 자각 또는 깨달음의 힘은 우주를 창조하는 능력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는 말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자각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우주에서 자신이라는 게 없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은 사람의 우주에는 저마다 자기 혼자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우주라는 장소에 집합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우주에 저마다 한 사람씩 존재하고 있음입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에 비추어 본다면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지만, 우리의 오감에 의해 인식되는 우주가 환상이라거나 환영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보다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존재한다는 인식은 착각이거나 환영이며, 저마다 자기 혼자만의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까지도 모두가 환상이거나 환영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말입니다. 또한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니고 내가 곧 우주입니다. 그러니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다는 말은 동어반복이기도 합니다.

나는 우주 전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주와 마찬가지로 나는 사라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다는 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의 공상이자 가정일 뿐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무 無 또는 없음이란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 존재하는 무엇 즉 전체입니다. 고로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는 얘기는, 무언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누어진 부분에서 하나로 통합된 전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음과 전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여기서 하나로 통합되었다고 해서 다시 부분적인 모습을 상정하지는 마세요. 부분이 되는 전체란 없습니다. 무엇 하나 남김없이 부분이 사라지는 상태가 바로 전체이죠. 그러니 전체란 또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 대상과 인식이 하나로 합쳐진 상태이며, 인식 대상과 인식이 하나이기에 이를 말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인식할 수는 없는 무엇입니다. 다만 느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의식한다고 말할 때 이는 사실 의식이 아니라 인식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의식된 다음, 의식된 것(감각. 감정. 생각. 의지. 앎. 느낌. 기억)을 나중에 인식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인식되기 전에 의식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인데, 우리는 뒤에 따라가는 즉 뒤에서 인식하는 주체를 우리 자신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인식 이전의 의식을 의식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뒷북만 치는 것입니다. 다만 의식되는 순간에 의식할 수는 없다 해도, 그렇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는 있습니다. 이게 바로 깨달음입니다. 인식 이전에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즉 깨닫게 되면 우리는 의식과 동시에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어도 의식과 동시에 느낄 수는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영감입니다.

영감을 통해서 깨달음이 오고 깨달음과 함께 영감이 옵니다. 그래서 깨달은 선사들이 생각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치일 뿐입니다. 자신은 깨달았기에 생각하지 않고 느낄 수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은 생각만 있고 느낌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생각을 억지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생각을 내려놓거나 끊으라는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생각을 멈추는 훈련을 하거나 시킬 게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두려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두뇌 속에서 이성이 바쁘게 작동하는 것이며, 이성의 작동이 바로 생각입니다. 즉 두려움의 원인을 없애고자 하는 게 생각 즉 이성의 활동 목적입니다.

감각 즉 오감을 통하여 두려움의 대상을 먼저 파악한 다음, 파악된 대상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지 논리적으로 방법을 강구하는 게 바로 이성이자 생각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 사례 등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자 두뇌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며, 무언가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소위 멘붕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착각일 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리석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에서 벗어나 더 큰 존재인 신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존재로서의 신을 상상하고 이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게 신의 힘이든 절대자의 힘이든 그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힘일지라도 결국 나와 내 몸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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