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절망조차 포기한다는 것

신타나몽해 2022. 1. 4. 08:43
절망조차 포기한다는 것


우리는 젊어서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부와 명예의 증대를 추구하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맨 나중엔 정신적 평안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정신적 평안을 얻는 길은,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용어를 빌리자면 내려놓거나 내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다거나 또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는 길은, 다름 아닌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했을 때입니다. 즉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거나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도 마지막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을 추구하거나 신에게 내맡기는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포기마저도 포기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려놓음이나 내맡김이란 스스로 포기하는 것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포기하고 난 뒤 따라오는 절망을 마저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건 모든 걸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려놓거나 내맡긴 게 아니라, 여전히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을 포기하는 것! 이게 바로 선불교에서 비유로 말하는, 은산철벽을 뚫는 일이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것입니다. 희망은 상황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저절로 포기하게 되지만, 절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란 없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다시 희망을 잡으려고 덤벼들 뿐, 절망마저 놓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은산철벽이니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비유가 생긴 것이며, 절망을 마저 놓기란 이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놓고 절망마저 놓았을 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전에 보았던 절망의 반대편에 있는 희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뛸 듯한 기쁨이 아니라 여여한 기쁨을 맛볼 수 있음입니다. 내려놓음이나 내맡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내려놓아지고 내맡겨지는 것입니다. 절망조차 포기했을 때 말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다시 희망을 붙잡기 위해 눈을 반짝일 게 아니라, 절망조차 내려놓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절망조차 포기하는 것입니다. 절망조차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하여, 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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