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인식과 기억에 대하여

신타나몽해 2022. 1. 4. 08:17
인식과 기억에 대하여


오감을 통하여 감각된 것이 이해를 거쳐 지각된 다음 인식되고 기억되는데, 기억에는 이미지(像)적 기억과 관념적 기억 그리고 습관적 (또는 신체적) 기억이 있다. 형상이 있는 사물은 이미지로, 무형의 형이상학적 대상은 관념으로 뇌세포 속에 기억되며, 그리고 반복 동작은 신체적 습관으로 몸 전체의 세포 속에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데 반복 동작에 의한 신체적. 습관적 기억은 두뇌를 거쳐 인식된 다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이해에서 인식이 생략된 채 신체적 기억으로 바로 넘어가는 시스템이므로 여기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인식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겠다. 따라서 신체적. 습관적 기억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인식이란 대개 감각되는 즉시 인식되지만, 사물이 불분명하거나 사전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오감을 통하여 감각된다고 하더라도 인식되지 않는다. 더구나 형이상학적 대상인 경우에는 언어를 통해 전달되기에 특히 그러하다. 철학이나 인문학의 경우, 용어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아무리 듣거나 보아도 인식은커녕 이해도 안 된다.

즉 사물의 경우에는 사전에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며, 형이상학적 대상의 경우에는 사전에 개념적 지식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식 이전에 이해가 되고 그 뒤에 인식이 이어지며, 인식된 다음에야 기억이라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인식 단계는
첫째, 사전에 경험적 또는 개념적 지식이 있어야 하며
둘째, 사전에 갖추어진 경험적, 개념적 지식을 통하여 감각되는 사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감각되는 언어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게 되며
셋째, 스스로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인식이 이루어진다. 물론 반복되는 사물이나 언어에 대하여는, 이해를 거치지 않고 감각 즉시 인식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이해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일 뿐 이해 단계가 아예 생략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식의 오류 즉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사물이나 언어를 감각적으로 대충 살피고는, 기억 속에 있는 비슷한 자료를 꺼내와 이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게 바로 착각이다.

아무튼 인식 과정 다음에는 기억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생체적 오류가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치매다. 인식되기는 하지만 지속해서 기억되지 않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기억되기에, 치매 환자는 자신의 행동이 맞다고 인식하게 된다. 기억되는 순간까지는 모든 게 정상적이나, 정작 행동이 이상한 이유는 기억이 짧은 순간 동안만 지속하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을 기억할 뿐 전체적으로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앞뒤 맥락을 따져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금붕어와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을 지속해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 환자는 같은 말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억지를 부리고 주변 사람을 의심하곤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우리의 인식 구조는 사전에 구비된 경험적 개념적 지식을 통해서 이해가 이루어지며, 이해에서 인식으로 이어진 다음 인식된 내용이 기억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경험이나 개념이 갖추어지지 않은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이해 단계가 생략되고 인식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런 다음 성장함에 따라 스스로 이해가 되어야 받아들이는 경우와 이해가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교차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미운 일곱 살이니 미운 다섯 살이니 하는 말이 생겨나는 이유다. 이때부터 우리는 삶을 마칠 때까지, 인식 이전에 이해를 먼저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나중으로 미룰 것인지를 두고 자신의 의식 속에서 평생 갈등하게 된다.

(사전 자료) - 감각 - 이해 - 인식 - 기억의 반복 순환이 우리 인간의 정신 활동 시스템이다. 물론 여기서 사전 자료가 구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감각에서 이해가 아닌 수용을 거쳐 인식으로 가는 특수한 상황도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배움 또는 학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용을 통한 배움의 시간도 있지만, 사회생활의 대부분은 이성을 통한 분석. 평가. 판단. 추론 등에 의한 이해를 앞세우게 된다. 이해되어야 받아들이며, 받아들여질 때 대상이 인식되는 것이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얼른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견해는 일단 거부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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