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와 중심
중도란 고정된 관념 덩어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고정된 관념이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서 자신의 관념을 옳고 합리적인 상태로 만든다 해도, 그건 중도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 말은 마음 또는 다른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관념을 모두 부수어 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양변의 중심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양변과 중심을 모두 부수어 없앨 때, 그때가 바로 중도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변만을 생각해왔으나, 정녕 중요한 것은 중심을 부수어 없애는 것이다. 양변을 없애기는 오히려 쉽다. 문제는 중심이다. 자신 안에 있는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옳고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중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신 안에 있는 객관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반응하여 행동할 때 객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옳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행동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옳은 것은 없을뿐더러 객관이라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관이며 주관적으로 옳을 뿐이다. 다수의 주관이 서로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걸 객관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수의 주관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중도란 고정된 관념 덩어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고정된 관념이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서 자신의 관념을 옳고 합리적인 상태로 만든다 해도, 그건 중도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 말은 마음 또는 다른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관념을 모두 부수어 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양변의 중심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양변과 중심을 모두 부수어 없앨 때, 그때가 바로 중도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변만을 생각해왔으나, 정녕 중요한 것은 중심을 부수어 없애는 것이다. 양변을 없애기는 오히려 쉽다. 문제는 중심이다. 자신 안에 있는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옳고 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중도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신 안에 있는 객관적으로 옳다는 판단을 없애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반응하여 행동할 때 객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옳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행동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옳은 것은 없을뿐더러 객관이라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관이며 주관적으로 옳을 뿐이다. 다수의 주관이 서로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걸 객관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수의 주관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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