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여전히 천동설

신타나몽해 2022. 3. 19. 10:41

여전히 천동설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을 우리는 받아들이고 기억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감각만이 진실을 담보한다는 어리석은 믿음은 여전하다.

오늘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과학이라는 이름에 의해 세뇌된 모습일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여전히 천동설을 믿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태양이 도는 것으로 보인다면, 시각이라는 감각이 잘못된 것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오감으로 확인한 사항만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야 위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차치하고라도, 공전 속도가 대략 초속 30km라고 하므로 이를 시속으로 바꾸면 10만km가 넘는다. 이러한 속도로 하루도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달리는 지구 위에서, 자신의 감각으로는 땅 즉 지구가 가만히 서 있다고 느껴진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우리는 오감이 진실을 담보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오감 중에 시각도 그렇지만 청각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자동차에서 난다고 우리는 착각하지만, 자동차에서부터 우리의 귀 사이에 있는 허공에는 공기의 진동과 정적만이 가득할 뿐, 소리는 각자의 귀에 있는 고막 안에서부터 난다는 게 우리가 배운 과학 지식이다.

오감이라는 우리의 감각은 진실의 보고가 아니라, 오류투성이임을 하루라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오류투성이인 감각에 의존하여 생활한다고 해서, 생활하는데 무슨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된다. 태양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대강의 시간을 알 수 있으며, 자동차에서 나는 경적 소리에 몸을 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감각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나머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차량이 환상일 수 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물론 불교의 공(空) 사상을 받아들여 머리로는 동의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스스로 깨달아 이를 가슴으로 체감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물자체(Ding Aa Sich)를 알 수 없다는 학설을 발표하였으며,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빛에 의한 사물의 상을 보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빛이 만드는 홀로그램을 보고 있음이다. 사물의 여러가지 모습 중에서, 빛에 의해 반사된 모습 하나만을 보고는 그게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음이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시각에 의해 속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시각에 의한 관찰만이 진리를 담보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 교황청에서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조르다노 부르노를 화형시키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단순히 육안에 의한 관찰만이 진리를 담보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각을 비롯한 자신의 감각이 잘못될 수 있음을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중세 시대 유럽의 천동설을 믿던 사람과 다를 바 하나 없다. 눈으로 보아 분명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임에도, 자신의 오감이 잘못되었거나 또는 잘못될 수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공주사대부고 19회 졸업생,
2022년 문집 '가본 길' 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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