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위대한 깨달음

신타나 2025. 12. 10. 00:15

위대한 깨달음


절망의 끝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 때 우리는 자칫 자신이라는 개인마저 포기하기 쉬운데, 나는 여기서 마지막 포기조차 포기해야 완전한 포기라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자신이라는 개인을 포기하는 것! 그게 바로 깨달음 직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라는 개인마저 포기했을 때 우리는 쉽게 자살을 결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포기조차 포기해야 완전한 포기라는, 내 안의 깨달음을 널리 전파하고자 나름 애를 쓰는 것이다.

국왕인 아버지와 처자식을 두고 밤중에 몰래 궁궐을 빠져 나와 사문이 되고자 했으며, 어렵사리 사문의 길로 들어선 뒤에도 깨닫고자 6년간 처절한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괴로웠던 싯다르타(석가)는, 결국 도반 다섯 명과 함께 두 번째로 만난 스승의 곁을 떠나 유랑하던 중 절망감에 졸도하여 길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이튿날 새벽, 같은 길을 지나던 수자타라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우유죽을 얻어먹고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후 싯다르타가 단식과 고행이 아닌 평범한 생활인의 길을 택하자, 동행하던 도반들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며 곁을 떠난다. 혼자 남게 된 싯다르타는 이때 또 절망감이 엄습했겠지만, 그는 포기의 마지막 과정인 절망마저 포기했음이다. 그야말로 포기조차 포기하는 제대로 된 포기를 한 것이다.

국왕인 아버지와 처자식조차 뒤로 하고 사문이 되어 6년간 처절한 수행을 했음에도 끝내 스스로 깨달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그의 깨달음을 인가한 마지막 스승의 곁에서도 떠나온 싯다르타는 졸도 이후 고행을 멈추고, 매일 아침 수자타의 우유죽을 받아먹으며 다만 명상을 행하자, 이에 실망한 다섯 도반들이 그의 곁을 떠나 혼자 남게 된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명상을 계속 이어갔다. 혼자 남았다는 고독감과 절망감이 컸을 테지만, 그는 그러한 절망감을 마음속에 담아 두지 않고 모두 내려놓았던 것이다. 이게 바로 포기조차 포기하는 깨달음의 길이다. 이후로 어느 날 새벽 명상 중에 샛별을 보다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 안에 샛별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샛별이 있는 우주 안에 자신이 들어있는 것도 아닌, 샛별이 떠 있고 싯다르타라고 불리는 몸체가 나무 밑에 앉아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즉 나라는 게 지금 여기에 따로 떨어져 있는 몸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체 또는 절대 안에 자신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통째로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 순간에 무아 無我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라는 게 따로 분리된 채로 존재하는 유형의 개인이 아니라, 내가 바로 무형의 전체 또는 절대와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음이다. 이때가 바로 싯다르타가 중생에서 붓다가 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나라는 건 전체 또는 절대 안에 있는 부분일 뿐, 나라는 개인적 인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개인은 없다는 뜻인, '무아'에 대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실로 위대한 깨달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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