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초자아성

신타나 2025. 12. 25. 11:41

초자아성


우리는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하여 자아라는 성품을 본다. 이것을 자아성이라고 한다. 반면 초자아성이란 이런 자아성에서 벗어난 성품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자성이란, 자아성이 아닌 바로 초자아성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자아성을 보기는 쉬워도 초자아성을 보기는 어렵다. 자아성이란 우리가 자신이라는 존재를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때부터 쌓인 성품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몸에 밴 인식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 나이가 옛날에는 일곱 살 때부터여서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요즘엔 그것도 네 살로 내려갔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자아성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아성을 체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로 돌아가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자아성을 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아성을 체득하기 전에는 자아성을 느낄 수도 버릴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어린 나이에 자아성을 체득하도록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음이다. 자아성을 체득하게 되면 미운 일곱 살이라고 놀리면서도, 자아성을 빨리 체득하지 못하면 모자라는 아이가 아닐까 하고 부모들은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걱정인 셈이다.

여하튼 자아성에서 벗어나려면 즉 초자아성이 되려면, 오히려 자아성에 대한 체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앞에서 길게 설명했다. 초자아성이란 다름 아닌 자아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아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기 몸을 중심으로 자아라는 성품이 체득되었으므로, 벗어나는 건 이와 반대로 행하면 된다. 먼저 자신의 몸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게 바로 무아이다. 자기 몸이 곧 자기가 아님을 깨닫는 게 바로 무아이며, 따라서 초자아성이란 무아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아라는 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게 바로, 무아라는 단어가 지닌 뜻이다.

무아 즉 내 몸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점차 자아성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아성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깨달음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깨달음은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의식이다.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현상이 아닌 의식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튀밥을 튀길 때 어느 한순간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튀밥이 튀어나오지만, 그 한순간 이전에 오랜 시간 동안 열을 가했기 때문에 튀밥이 터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튀밥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듯이, 깨달음이라는 것도 많은 애씀과 추구 끝에 마지막엔 애씀조차도 놓아버리는 순간에 터지는 것이지, 결코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일어나는 돈오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초자아성이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잊어버렸다가 점진적으로 다시 깨닫게 되는 성품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초자아성을 깨닫는 게 바로 깨달음이라는 얘기도 앞에서 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몸이 자기가 아니라는 무아를 먼저 깨닫고 나서, 다음으로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성품인 자아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자아성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초자아성이고, 초자아성을 되찾는 게 바로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억을 되찾는 깨달음인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한 기억을 빨리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깨달음의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의지와 순종  (0) 2025.12.27
공 空과 절대  (0) 2025.12.26
정반합 正反合  (0) 2025.12.24
소확행과 지복  (0) 2025.12.19
내 안의 나  (0) 202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