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일 뿐이다. 생각이란 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 내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과 (기억되는) 기억을 내가 손으로 적는 것일 뿐이다.
내가 생각해서 글을 쓰려고 할 때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오며, 또한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앉아서 명상하거나 화두 참구를 할 때도, 내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기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저절로 일어난다.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아 알 때, 우리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물론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내가 노력을 해야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배워왔고, 또한 그렇게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래된 가르침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 내가 노력해야 하는 건 맞지만, 결과가 내 노력의 산물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라는 격언에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되 결과는 하늘 즉 신에게 맡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콩을 심었다고 해서 콩이 나는 게 아니라, 하늘(신 또는 자연)이 나게 해주어서 콩이 나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에 두통이 생기고 상기증이 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일상의 삶에 불평불만이 쌓이게 된다.
스스로 이를 얼른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불만이 쌓여, 점차 몸에도 마음에도 병이 깊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내가 노력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글을 쓰지만, 모든 건 '내 안에 있는 나'가 이 모든 일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겸허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콩을 심었어도 콩이 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나아가 이를 사실로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안의 나 즉 신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신과 나 사이에 무슨 상거래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나'를 '참나'라고 해도 좋고 '신'이라고 해도 좋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가 대화의 상대방에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지칭하는 것도, 그를 떠올리고자 함일 뿐이지 않은가? 내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절대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자신이 되지 말자. 신이면 어떻고 하느님이거나 하나님이면 또 어떠하며, 붓다이거나 브라만이면 또 무슨 상관이랴. 이름이 신성한 게 아니라 그러한 존재가 신성할 뿐이다. 도덕경 앞 부분에 나오는 명가명비상명 名可名非常名이라는 구절처럼,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신이든 부처든 제각기 종파마다 우리 인간이 붙인 이름일 뿐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를 망라하여, 내 안의 나 또는 참나 또는 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