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신은 개체적이지 않다

신타나 2026. 1. 12. 20:34

신은 개체적이지 않다


개체적인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도를 비롯한 신을 믿는 종교인들 대부분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개체적인 신을 떠올리지만 말이다. 신이란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하며, 무소부재한 즉 없는 곳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없는 곳이 없으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금빛 보좌에 앉아 있는 개체적인 존재일 수는 없음이다.
한마디로 신이란, 인간의 오감으로 즉 감각적으로 알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누군가는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그 안에는 앞에서 감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얘기했음에도, 또다시 우리의 오감으로 알 수 있는 어떤 다른 모습을 상정하고 있음이다.

결론적으로 신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어디 밖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개체가 아닌 전체이며 절대이다. 고로 오감에 의해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으나, 저마다 내면에서 의식할 수는 있음이다. 밖에 있는 인식의 대상은 아니나, 내면에서 의식될 수는 있다는 말이다.
저마다의 내면에서 신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더해서 감각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욕심을 내고 있음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은 개체이거나 상대 또는 대상이 아닌, 전체이자 절대이며 주체이기 때문이다.

신이 주체라는 말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인간의 몸을 비롯한 모든 물질적 존재는 대상인 반면, 신을 비롯한 우리 자신(참자아)은 대상이 아닌 주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대상이 아닌 주체라는 말에 깊은 의미가 있다. 대상은 감각의 대상이지만, 주체는 감각의 대상이 아닌 오히려 주체이기 때문이다.
감각의 주체라는 말은, 주체가 무엇인지를 인간의 오감으로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눈이 눈 자신을 볼 수 없고 거울이 거울 자신을 비출 수 없다는 비유와 같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해도 다만 의식할 수는 있다. 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신을 의식한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열등한 것도 아니다. 다만 신을 의식하는 사람 중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과거에 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와, 신을 알고 신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지금과는 내 마음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신이란 개체가 아닌 전체이자 절대이며, 나라는 존재 또한 신과 똑같은 전체이자 절대라는 사실을 아는 지금, 강 같은 평화와 평안이 내 안에 가득하다. 신은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어디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나와 늘 함께하는 친구 같고 가족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 알 때, 우리는 언제나 신과 함께할 수 있음이다.

신과 함께하게 될 때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전체인 신의 부분임을 알게 될 것이고,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생명이 유한한 것이지, 생명 자체인 참자아로서의 우리는 무한한 존재임을 깨달을 일이다. 신이란 개체적 존재가 아니라, 전체이자 절대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신이란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인 동시에 친구 같고 부모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 안다면, 우리는 한결 평화로운 마음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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