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천자봉에서

신타나몽해 2005. 6. 1. 12:12

                  천자봉에서



빨간 산불방지 재킷을 입은 아저씨가
검정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비틀거린다
오월의 푸르름에 취했나 보다
비닐봉지 안에는
양은 도시락과 젓가락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가 천자봉에 있는 시간은 기다림이다
나타나서는 안 될 산불을 기다리고 있으며
동사무소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젊은 직원을 기다리고
집으로 돌아갈 저녁 시간을 기다린다

온 산에 지천으로 덮인 풀잎에 맺힌 고독은
뱀이 마시면 진한 자양분으로 채워지지만
그가 마신 독은 사지를 뒤틀리게 하고
석양이 노을빛으로 빚어 만든
석양주(夕陽酒) 라는 이름의 해독제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고독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고독은 산 속에만 있지 않고
구멍가게 앞에 놓인 평상에도 있으며
석양주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있다

부지런한 고독은
그보다 먼저 집에 와있고
그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담배를 피워 물며
오늘도 천자봉에서
여전히 그와 함께 고독한 하루를 보낸다

*천자봉-경남 진해시 웅천동 관내에 있는 산봉우리


자란 김석기 2005

*^*^*

2005년 7월호 <문학바탕>

진해문학 19집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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