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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 無我

무아 無我 오늘 문득 내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내려놓음이자 내맡김이라는 생각과 함께. 구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나란 내 생각 안에 있는 나를 말함이다. 어쩌다가 나를 내려놓고 보니 (즉 나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보니), 그동안 내가 나를 붙들고 있었음이 느껴진다. 이 모든 게 신의 뜻이자 신의 사랑이다. 나의 자유의지가 바로 신의 뜻이요 신의 사랑이니 말이다. 내가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신의 뜻이요 신의 사랑이라면 내가 내세울 게 무엇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두려워할 게 무엇일까? 무엇도 나를 내세울 게 없고 무엇도 내가 두려워할 게 없다. 그저 기쁘면 기뻐하고 기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으면 될 ..

깨달음의 서 2023.05.22

나를 안다는 것

한마디로 우리의 삶이란 '나를 알아가는 것'이며 따라서 삶의 목적은 '나를 아는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 청년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쳤으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굳이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 흔히 얘기하는 이른바 깨달음이라는 단어도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마라톤 완주 테이프를 통과하듯이 어느 한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고 깨달아지는 게 아니라 평지에서 높이를 더해 봉우리가 되고 산이 되며 얕은 물이 깊이를 더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깨달음이 쌓여가는 것이다. 깨달음이 쌓여갈수록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하여 ..

깨달음의 서 2023.05.22

주관과 객관의 세계

주관과 객관의 세계 다수가 믿어마지 않는 객관의 세계에서 살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걸어가는 주관의 세계를 살든지는 저마다의 선택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게 아닌 한 쪽을 기준으로 삼되 다른 쪽을 수용하는 것이다 기준이 어느 쪽이냐가 삶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보리수나무 아래 문득 보이는 샛별 아래 내가 있느냐 내 안에 샛별이 있느냐 객관 속에 주관이 있느냐 주관 속에 객관이 있느냐의 문제다 내 몸이 곧 외부세계에 포함된 하나의 대상임을 자각했을 때 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은 시공조차 없는 텅 빈 침묵 나는 보이지 않는 무 無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텅 빈 빛 무아無我이면서 분명 존재하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삼위일체 객관으로 땅을 딛고 주관으로 하늘을 바라볼 일이다 객관 속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