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아침

신타나 2024. 10. 11. 18:20

아침 / 김신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고개 들어보니 창문 밖은 안개가 뿌연 아침이었다. 하긴 평소대로라면 초저녁이었을 저녁 9시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잠자리에 누웠다가 밤 열두 시쯤 다시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학생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도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으나, 쉰 살쯤인가부터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도무지 재미가 없고 싫증이 나서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소설 읽기를 포기하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e북으로 구입해 읽느라 창밖에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점에서 각각 쓰인,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이라는 3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

2부 몽고반점에서는, 정신병원에 갇힌 채 음식 거부로 말라가는 주인공이 자신의 언니에게, "왜, 죽으면 안 되는 거야?"라고 묻는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과 함께 울음이 나기도 했다. 양 손발을 결박하면서까지 억지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장면에서는, 왜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을 선택할 자유조차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일기도 했다.

작가는 소설 막바지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보이는 모든 현상이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과 같은 내용을 잠깐 다루었으며, (장자의 글에 나오는) 나비의 꿈에서처럼 이 세상에 우리가 산다는 게 한바탕 꿈이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소설의 끝을 맺는다.

지금은 흐린 세상을 만들던 아침 안개가 모두 사라진 한낮의 풍경이다. 그러나 풍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세상이 허상이거나 꿈인 것은 아니다. 대상이 바뀌어도 주체가 그대로라면,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재인 것이다. 아침이 한낮으로 바뀌었어도, 그러한 세상을 바라보는 무형의 나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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