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깨닫는가?
자신이 무엇인지를 무엇이 깨닫는가? 영혼이 깨닫는다. 영혼이란 씨앗주머니 속에 든 씨앗과 같다. 여기서 씨앗주머니란 망각을 뜻한다. 즉 영혼은 몸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을날 바람만 살짝 불어도 씨앗주머니가 터지듯이,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하나에도 망각이 터져 점차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만 씨앗주머니처럼 한꺼번에 터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하나씩 망각이 깨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깨닫는 게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깨달음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무아 無我라고 말씀했다. 대상과는 달리 주체란, 분리된 개인 또는 개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결국 의식인데, 이 의식을 '나'라고 이름 붙이게 되면 '나'라는 것이 근원이자 절대인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개체적이고 개별적인 주체 또는 대상이 되고 만다. 주체는 근원이자 절대인 '나' 하나뿐이고, 우리의 몸을 비롯하여 오감으로 감지되는 우주 만물은 하나의 대상일 뿐인데, 몸 마음과 함께한다고 느껴지는 의식을 나라고 이름 하게 되면, 주체가 대상으로 전락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이상한 일이 유사 이래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몸을 비롯한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 물질계에는 근원이자 절대인 '나'라는 게 없다. 없어서 없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사실 전체이자 절대로서의 나는, 우리의 몸 안팎을 비롯한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 인간의 몸을 비롯하여 우주 전체가 곧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는 오감으로 감지되지 않기에, 우리는 '나'라는 것을 지각할 수 없고 따라서 인식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라는 게 없다고 석가모니는 무아 無我를 설파했다.
여기서 무아란 분리된 '개체로서의 나'란 없음을 뜻한다. '몸과 함께하는 개체로서의 나'란 하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전체이자 근원이며 절대인 나'라는 것을,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지각할 수는 없다. '전체이자 근원인 나'를 불교에서는 부처라고 표현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모두가 실체가 아닌 언어일 뿐이다. 전체, 절대, 순수 등 이 모두가 하나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언어로써 표현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해서 즉, 몸의 감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러한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건 아니다. 전체, 근원, 순수, 절대는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오히려 분리된 개체적인 나 또는 개별적인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던 개체로서의 나라는 게 사실은 허상이거나 환상일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착각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방금 전 말한 '개체로서의 나' 또는 '환상. 허상'이라는 말이 자신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니다. 육체가 아니라 '육체와 함께하는 개체적인 나'라는 관념이 환상이거나 허상이라는 말이다. 육체인 몸뚱이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관념 속에 있는 '육체와 함께하는 개체로서의 나'가 바로 환상이요 허상인 것이다.
'개체로서의 나, 환상, 허상'이라는 말과 육체 즉 몸뚱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가 육체를 자신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육체가 환상이거나 허상인 게 아니라, 육체를 자신이라고 믿는 게 바로 환상이요 허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점을 이른바 깨달은 분들조차 혼동하곤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면, 내면과 현실이 하나로 뒤섞이기 때문이다. 단지 내면에서 몸 마음이 나라는 환상이 사라졌음에도, 이를 내면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같이 사라진 것으로, 자신도 모르게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가 환상이거나 허상인 게 아니라, 육체를 자신이라고 믿는 그 관념이 바로 환상이요 허상이라는 점을 깨우치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그 착각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육체는 허상 또는 환상이 아니라, 일종의 도구이거나 연극배우가 된다. 허상인 '개체로서의 나'가 아닌 실재하는 '전체로서의 나'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도구이거나 연극배우가 (이를 아바타나 캐릭터로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실재하는 전체이자 애써 지상으로 온 영혼인 '무형의 나'와, 무형의 나를 대신하여 물질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몸이 있으며, 둘 사이를 오가며 조정하기도 하고 이간질하기도 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3중의 존재다. 이 중 깨닫는 것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애써 지상으로 온 영혼이다. 영혼이 몸이라는 겉옷을 입으면서, 영혼 스스로 지워버린 기억을 다시 되찾는 게 바로 깨달음이다. 스스로 상실시킨 기억을 마치 보물찾기하듯, 다시 찾아내는 게임을 하는 게 바로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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