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이 나라고 믿어오다가 깨달음을 얻어 내면에 있는 '허상의 나'로부터 벗어났을 때,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외부 현실이 아니라 내면 의식일 따름이다. 그것을 우리는 내면 의식에서만이 아니라 외부 현실인 물질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것처럼 '색즉시공'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인 색 色이 공 空한 게 아니라, 내면에서의 현상만이 텅 빈 공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나'라는 존재가 개체이며 따라서 전체와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오다가, 자신이 개체가 아닌 전체임을 깨닫고는 개체로서의 자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허상의 울타리(=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즉 분리된 개체란 없고 전체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전체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라는 분리된 개체가 내면에서 사라지는 것일 뿐, 물질계에서의 우주 만물에 무슨 변화나 변동이 생기는 것은 아님에도 말이다.
'허상의 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안팎이 사라져 버렸을 때 우리 마음은, 안팎이 사라진 곳이 내면의 의식 세계인지 외부의 물질세계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내면의 의식 세계와 외부의 물질세계 모두를 안팎이 없는 하나의 세계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형의 물질세계도 무형의 의식 세계처럼 텅 비었다고 주장하며, 물질세계에 있는 우주 만물이 모두 허상이고 가짜라는 황당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깨닫게 되면 내면 의식에 있던 '허상의 나'라는 굴레가 사라져 내면에서만 안팎이 없어지는 것이지, 물질계마저 내면과의 안팎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면과 물질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만 '허상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깨닫게 되면, 내면에서 '허상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에 안팎이 사라짐과 대자유를 느끼는 것이지, 내면과 물질계 사이의 경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깨달은 선각자들이 깨닫고 난 뒤, 무형의 내면 의식 세계와 유형의 외부 물질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 둘을 같은 하나의 세계로 착각하기 때문에, 물질계가 허상이고 가짜이며 반야심경에서와 같이 색즉시공이라는 엉터리 주장을 오랫동안 해온 것이다. 깨닫게 되면 느낄 수 있는 온 우주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내면 의식에서 일어나는 느낌일 뿐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느낌이 아님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 사실 하나를 깨닫는 데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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