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주체와 전체

신타나 2024. 10. 10. 02:38

주체와 전체


주체는 오직 하나뿐임을 알라.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인 것이다. 지상과 천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그러한 존재가 바로 신이기에 유대교를 비롯한 많은 유일신 종교가 탄생했다. 힌두교와는 달리 신이 없다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해서 중생처럼 많은 부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중생이 하나의 부처로 귀의하는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 과거에서부터 많은 부처가 있었다는 사상은 힌두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힌두교에 많은 신이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많은 부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싫어하면서도 닮아 가는 게 우리 인간사(人間史)이다.

전체란 크기가 없다. 따라서 전체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한하게 큰 우주란 또 다른 유한일 뿐이다. 크기가 아무리 크다 해도 크기가 있다면 그것은 유한한 개체이지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와 마찬가지로, 지상과 천상을 통틀어 주체란 둘이 아니라 하나일 뿐이다. 주체가 둘이라면 그중 하나는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체와 전체라는 건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체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주체이다. 고로 반복되는 얘기이지만, 주체라는 건 전체와 마찬가지로 둘이 아닌 오직 하나이다. 또한 전체라는 게 개체에서 벗어난 상태이듯, 주체라는 것도 대상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전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개체에서 벗어나면 그게 곧 전체이듯, 주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상에서 벗어나면 그게 곧 주체이다.

고로 우리는 개체로서의 나에서 벗어나야 하며, 대상으로서의 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체로서의 나에서 벗어난다 함은 다름 아닌, '몸 마음이 곧 나'라는 인식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또한 대상으로서의 나에서 벗어난다 함 역시, 다름 아닌 '몸 마음이 곧 나'라는 인식에서 벗어남이다. 몸 마음이란 개체인 동시에 또한, 오감으로 인식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참 자아인 나는, 언제나 신과 함께 우리 저마다의 내면에 말없이 존재할 뿐이다. 나와 신은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오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체에서 벗어나고 대상에서 벗어났다면, 몸 마음이 아닌 나는 내면에 있는 신과 동등한 존재일까? 그건 아니다. 몸 마음에서 벗어난 무형의 나는, 신과 하나로 연결된 신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 몸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신과 나는 몸과 세포의 관계라고 비유할 수 있다. 몸이 곧 세포이고 세포가 곧 몸이지만, 세포는 몸과 하나로 연결된 몸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몸 마음이 곧 나'라는 인식에서 벗어남이 바로 무아 無我의 뜻이다. 따라서 석가모니가 설파한 무아의 뜻이, 아무런 전제 없이 글자 그대로 '나라는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몸 마음이 살아가는 물질계에는 나라는 게 없다는 뜻이다. 나는 몸 마음과 함께하지만 오감으로 감각되는 유형의 존재가 아니라, 내면에서 신과 함께하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형의 내가 곧 신이자 부처인 것이다.

개체와 대상에서 벗어나 전체와 주체가 되기만 한다면, 또는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나를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언제나 신과 함께할 수 있음이다. 신은 저 멀리 혼자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늘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형이 아닌 무형으로 말이다. 고로 우리는 마음으로 또는 내면 의식으로 신을 느낄 수 있다. 깨닫게 된다면 거듭나게 된다면, 우리는 늘 신 또는 부처와 함께할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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