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란 무엇인가?
의식되는 것은 모두 대상이다. 따라서 유형은 물론이고, 무형까지도 의식되는 것은 모두 주체가 아닌 대상이다. 무형의 대상인 생각이나 감정, 감각 등등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무형이 곧 대상이며, 거기에 마음이라는 것도 당연히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나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 자신을 의식하기에 "내가 일하고 내가 놀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말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에 이 글의 핵심이 있다. 내가 의식하는 나는 주체가 아니라, 그러한 나조차 대상일 뿐이다. 의식되는 나는 진짜 나(참나. 진아)가 아니라 허상인 가짜 나라는 말이다. 실제로 있지 않은 허상이기에 그러한 나는 없다는 뜻에서 무아라고 하는 것이다. 무아란 참나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허상의 내가 없다는 뜻이다. 보통의 우리는 죽을 때까지 허상인 나 또는 대상인 나를, 진짜 나 또는 주체인 나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의식되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나'일지라도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주체는 말 그대로 주체이기에 의식되거나 인식될 수 없다. 인식되는 순간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로 나(참나)라는 게 분명 있지만 대상처럼 인식될 수는 없음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무아를 설파했다. 후세 사람들이 무아의 뜻을 잘못 해석했다고 해서, 무아를 설파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할 때의 나는 한낱 허상임을 하루라도 빨리 깨우쳐야 할 것이다. 이게 바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무아의 뜻이다.
그리고 참나(진아)라는 게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허상의 나에서 벗어난 상태가 바로 참나이다. 고로 허상의 나에서 벗어난 상태 즉 무아를 체득한 때가 바로 참나를 체득한 상태인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참나를 의식하거나 인식할 수는 없다. 이는 눈이 눈 자신을 볼 수 없고 거울이 거울 자신을 비출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가 참나를 어렵사리 말로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도 참나를 인식할 수는 없음이다. 인식되거나 의식된다면 그건 이미 주체가 아닌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참나는 결코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오로지 주체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나를 의식하거나 인식할 수 없으며 다만, 몸과 마음을 나라고 착각하며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또는 초견성 후 한동안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이 참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참나란 생각이나 느낌, 감각 등 그 어느 것으로도 인식하거나 의식할 수 없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허상의 나에서 벗어나는 게 바로 무아이며, 무아의 상태가 곧 깨달음이자 참나의 상태인 것이다. / 김신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