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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평화의 소녀상'

남원 '평화의 소녀상' / 김신타 손바닥에 뭔가 들려있어 다가가 보니 누군가 벚꽃 한 가지 올려놓았더군 맞아! 지금이 삼월 말이지 문득 만져보고 싶어져 가녀린 당신 손 잡으며 얼굴 올려다보았지 무표정한 눈동자 먼데 보고 있더군 한참을 바라보더군 살면서 당신 곁을 그토록 지나쳤어도 처음으로 당신 손 잡으며 눈물 쏟았지 이유는 몰라 다만 내가 그랬어 당신 손길이 따스하더군 다음날 다시 찾아가 새 꽃가지 당신 손에 얹어주었지 오늘은 초점이 맞았는지 서 있는 내내 나를 바라보더군 누군가 씌워준 분홍 목도리와 파란 빵모자 맨발에 한 손으로는 치마를 움켜쥐고 있었지 더는 울음도 안 나오는 슬프고도 휑한 눈으로 돌아 가려는데 소녀상 한켠에 새겨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부치는 시인의 시에 오늘도 그만 눈물이, 동참한 ..

詩-그리고 또 2023.10.18

왕자와 거지

왕자와 거지 / 김신타 팔월 마지막 날에도 냇물이 쏟아진다 어제도 비가 내렸지 물은 다시 불어나 징검다리 여전히 잠긴 채 매미 소리 지금도 귓가에 쨍하다 쓸쓸한 허공에 걸쳐둔 시선 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여름 한때 물결 되어 흘러갈 뿐 누구나 왕자로 태어났지만 기쁘게도 우리는 거지가 되어 살아볼 수 있으며 거지에서 왕자까지 종소리는 넓게 울려 퍼지고 팔월 마지막 날, 이윽고 다가온 길 본래 왕자로 태어난 이제야 우리의 근원 비로소 알게 되다

신작 詩 2023.10.06

시월

시월 / 김신타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쯤 나는 비로소 석양처럼 익어가고 시월에 매달린 열매처럼 노을 진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쯤 나는 비로소 내게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 시월 어느 한가로운 아침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내가 전부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에 무아 無我일 터 나 하나뿐인 세상이므로 나를 위해 남을 돕고자 함이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함이다

신작 詩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