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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왕자와 거지 / 김신타 팔월 마지막 날에도 냇물이 쏟아진다 어제도 비가 내렸지 물은 다시 불어나 징검다리 여전히 잠긴 채 매미 소리 지금도 귓가에 쨍하다 쓸쓸한 허공에 걸쳐둔 시선 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여름 한때 물결 되어 흘러갈 뿐 누구나 왕자로 태어났지만 기쁘게도 우리는 거지가 되어 살아볼 수 있으며 거지에서 왕자까지 종소리는 넓게 울려 퍼지고 팔월 마지막 날, 이윽고 다가온 길 본래 왕자로 태어난 이제야 우리의 근원 비로소 알게 되다

신작 詩 2023.10.06

시월

시월 / 김신타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쯤 나는 비로소 석양처럼 익어가고 시월에 매달린 열매처럼 노을 진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때쯤 나는 비로소 내게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된다 시월 어느 한가로운 아침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나는 내가 전부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신만의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에 무아 無我일 터 나 하나뿐인 세상이므로 나를 위해 남을 돕고자 함이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함이다

신작 詩 2023.10.06

풍요

풍요 / 김신타 풍요가 있으므로 해서 가난이 있다 풍요가 없는 가난이란 있을 수 없다 바이블에 있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다른 이와 비교하는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풍요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풍요는 전체이고 가난은 부분이니 부분이 아니라 전체와 하나가 되라 가난에서 풍요로 향하는 게 아니라 풍요에서 풍요를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지금 풍요에 있다 현실이 풍요의 노정 路程이기 때문이다

신작 詩 2023.09.22

무위 無爲가 되라

무위 無爲가 되라 / 김신타 신념에서 확신으로 가지 말고 신념을 지나 무위 無爲로 갈 일이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다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무위에 설 일이다 무위에 서 있다고 해서 내면에 있는 신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는 긍정적인 힘을 가지게 될 뿐이다 긍정이라는 게 내 신념을 버리고 타인의 신념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바다나 강이 강물이나 냇물을 품는 것처럼 내 신념 안에 타인의 신념을 품는 것이다 타인의 신념을 배척하는 확신이 아니라 타인의 신념조차 받아들이는 무위가 되는 것 비록 얼마간 시간이 걸릴지라도 받아들임이 바로 내면의 힘이다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받아들임이 곧 나를 찾는 길이다

詩-깨달음 2023.09.21

불살생 不殺生

불살생 不殺生 살생이 살생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불살생이란 살생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살생이 살생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릇 생명이란 동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식물에도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를 동물로만 한정하여 살생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만들어놓는 게 보통의 종교 계율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다른 요일에는 상관없지만, 특정한 요일에 특정한 동물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계명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같은 종교를 믿는 후배 종교인들도 선배 종교인들의 이와 같은 금기에 대하여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현재도 명상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달려드는 모기를 일부러 잡지 않고 참으며 수행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종교적 수행 방법도 있다. 그러나 모기를 애써 잡지 않으며 수행하는 그들 종교의 교주가, 돼지고..

무탈한 삶이

무탈한 삶이 / 김신타 이어지길 바래왔고 행복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항상함이 아닌 변화무쌍할지라도 무탈한 일상이 아닌 무시로 바뀌는 삶이어도 변화가 내게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로 인해 기쁨 또한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 왔다 늘 잔잔한 바다 아닌 잔잔하다가 파도치고 파도치다가 잔잔해지는 이게 곧 삶이요 행복임을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신작 詩 2023.09.17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 김신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지만 '나'라는 존재조차 변할 뿐이다 내 안에 있는 생각, 감정 그리고 몸뚱이가 늘 변하는데 어찌 내가 변하지 않겠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나 신이라는 존재조차 당연히 변할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상의 합이 곧 신인데 어찌 우주 전체인 신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고로 우리는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이자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신작 詩 2023.09.10

배고픈 소크라테스

배고픈 소크라테스 / 김신타 나는 혼자서 생각했다 동물의 사전엔 고뇌가 없을 거라고, 상대가 눈에 띄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할 거라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 역시 불행은 멀리하고자 하며 행복만을 가까이하고자 한다 배부른 돼지가 롤 모델인 것이다 행복 속에 불행이 들어있음과 불행 속에 행복이 들어있음 또한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리라 타인의 행복한 웃음 속에서 그들의 불행했던 과거를 볼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의 지금 불행 속에서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리라 불행이 접지되지 않은 행복이란 번갯불에 언제 타버릴지 모른다 내 행복을 땅으로 흘려보내라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라 불행도 그렇지만 행복을 멀리할 필요..

신작 詩 2023.09.03

팔월

팔월 / 김신타 마지막 날에도 냇물이 쏟아진다 어제도 비가 내렸지 물은 다시 불어나 징검다리 지금도 잠긴 채 매미 소리 여전히 귓가에 쨍하다 누구나 왕자로 태어났지만 기쁘게도 우리는 거지가 되어 살아볼 수 있음이다 거지에서 왕자까지 종소리는 넓게 울려 퍼지고 팔월 마지막 날, 이윽고 다가온 길 쓸쓸한 허공에 걸쳐둔 시선 나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여름 한때 물결 되어 흘러갈 뿐

신작 詩 202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