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동일시라는 꿈 상태

무아 신타 (無我 神陀) 2020. 2. 13. 08:10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어쩌다

 

<못 받은 돈 받아 드립니다>

 

라고 쓰여있는 작은 현수막을 보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 편에 서게 됩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자신이 현수막에서 말하는 채권자의 입장에 서든지 아니면 반대로 채무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채권자 또는 채무자, 더러는 아주 드물겠지만 현수막을 내건 채권 추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동일시한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자신을 채권자, 채무자 또는 추심자와 동일시한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꿈 상태라고 부릅니다. 꿈꿀 때 우리는 꿈 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할 때 인식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즉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경우를 우리는, 꿈꾼다거나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 중에서 자신의 인식 흐름을 자각하지 못하는 채 보내는 시간이, 인식 흐름 즉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동일시가 자신의 무의식을 더욱 강화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자신 즉 돈을 떼인 채권자이거나 또는 채무자인 삶을 창조하게 되리라는 게 제 주관적 견해입니다.

 

해서 이 글은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듣는 순간 무의식으로 행하는 자기 동일시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또한, 그러한 무의식적인 자기 동일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함입니다.

 

무의식적인 자기 동일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곧 자신에 대한 자기규정을 날마다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자기규정이라는 쓰레기를 마치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보관합니다. 그리고는 '이게 바로 나야'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자랑스럽게 아니면 부끄러워하면서 내보이곤 합니다.

 

이를 정체성이나 아이덴티티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자기규정은 말 그대로 자신을 규정하는 족쇄입니다. 노예가 발목과 팔목에 채워져 있는 쇠사슬을 흔들며 자랑스러워하거나 또는 부끄러워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스스로 채운 쇠사슬을 스스로 풀어 내던져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 또는 명상할 때마다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누군가 또는 무엇에게 <저 자신에 대한 자기규정을 없애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주문을 반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우리 마음속 보물단지 안에 숨겨놓은 쓰레기를 찾아 내버려야 합니다.

 

자기규정을 날마다 스스로 비우고자 할 때 우리는 문득, 깨어있으면서도 꿈꾸는 상태인 무의식적인 자기 동일시를 하지 않게 되며 또는, 습관적으로 자기 동일시를 하게 되더라도 곧바로 이러한 자신을 자각하게 됩니다. 깨어있으면서도 꿈꾸는 상태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이 거기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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