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
나란, 내 몸을 포함한 감각과 감정, 생각, 의지, 기억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 그 무엇입니다. 몸만이 나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몸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모여 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모든 빛깔이 하나로 합쳐지면 아무런 빛깔이 없는 밝은 빛이 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몸을 비롯하여 감각에서부터 기억까지 모든 게 하나로 합쳐지면 이게 바로 아무것도 없음이자 '나'라는 본질이 됩니다.
'나'라는 본질은 아무것도 없음이자 무 無입니다. 우리 저마다의 몸이 죽음을 맞으면 몸의 기운은 '나'라는 본질 안에 그대로 남는 반면, 형체로서의 몸은 마치 땅콩 껍데기가 가을철 어느 순간에 알맹이와 분리되듯이 그렇게 분리되어 썩어갈 뿐입니다. 생명은 껍데기에 있는 게 아니라 알맹이에 있듯이, 우리 인간의 생명도 유형의 몸에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인 본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을철이 되기 전에는 땅콩 껍데기와 알맹이가 하나로 붙어있는 것과 같이, 몸도 죽음을 맞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음인 본질과 하나가 되어 생명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생명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만, 우리의 육체란 알맹이에 양분 또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통로인 껍데기와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다만 땅콩 알맹이는 물질 형태를 띠므로 껍데기와 쉽게 구분이 되지만, 인간의 본질은 물질 형태를 띠지 않으므로 물질 형태인 육체와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뿐이죠.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만 우리의 본질은 유형의 육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 또는 무입니다. 없음이 본질이기에 모든 가능성이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바이블인 빌립보서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런 형체나 형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신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존재이자 생명의 존재입니다. 다만 때가 되면 끊어버릴 수 있는, 육체라는 껍데기에 연결된 채 지구상에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게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입니다. 육체라는 껍데기에 연결되어 지구상에 태어남뿐만 아니라, 육체와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다시 없음의 세계로 돌아감도 모두가 자유의지입니다. 다만 태초에 우리가 창조된 이유는 신의 뜻에 의해 어쩌다 보니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죠. 우리 자신의 존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든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든 각자의 자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기쁨으로 그리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에게 죽음이란 마치 땅콩 알맹이와 껍데기의 분리처럼, 아무것도 없음인 우리의 본질과 육체와의 분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삶에서 오히려 커다란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본질은 신이기도 합니다. 신에 의해 창조된 신의 부분이지만, 그게 곧 전체이기도 한 때문이죠. 몸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바로 전체로서의 몸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신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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