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신타나 2022. 2. 10. 14:43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의식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습니다. 의식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며, 다만 의식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는 게 가능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으며,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에서 180도쯤 깨닫고 나면, 산이 산이며 물이 물인 것은 그것이 본래 산과 물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그리 이름 붙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반쯤 깨달은 이들은, 산이 산이 아니며 물이 물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180도 더 나아가 360도라는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달리 이름할 것 없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임을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산과 물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이름을 아예 없앤다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본질이 아닌 이름이나 개념을 바꾼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본질을 인식할 수 없으며 다만 본질에 대한 개념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본질에 대한 인식이란,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관념으로서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떠오르는 느낌으로서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인식이 가능하나, 우리 자신이기도 한 인식의 주체에 대해서는 겨우 이름 붙일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인식 주체가 인식 주체를 인식하지 못함입니다. 인식 주체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인 견성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인식에 의한 결과물의 집합인 기억 속에서, 인식 주체인 자신을 찾으려는 행위는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바느질하려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방안에 들어앉아 방 밖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바깥 모습을 알고자 한다면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처럼 기억 창고 관리자인 이성 理性에서 벗어나, 생각 없음의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멍한 상태를 상상하지는 마세요. 멍한 상태란 주의가 현재에 집중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분산된 상태일 뿐입니다.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나 불안이 없을 때, 우리는 지금 여기 현존하면서도 무념무상의 상태가 될 수 있음입니다. 이러한 때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직관 또는 통찰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영감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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