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신타나몽해 2023. 7. 2. 00:47

무상 고 무아 (無常 苦 無我)


불교 경전에서는 석가모니가 '무상 고 무아'를 설파했다고 합니다. 저는 예전에 '무상'과 '무아'를 설파했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고'라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알 수 있는데 이걸 뭐 설파할 게 있느냐고 질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아래 연결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이 세상(此岸)이 아닌 저 세상(彼岸)은 '고 苦'가 아닌 '낙 樂'이기에, 이 세상은 일부러 고생스런 세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고생만이 지속되면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즐거움도 있는 세상으로 말이죠.

https://youtu.be/Q6IMcVWkVUg



(참고로 예전에 올렸던 글을 복사해서 여기 다시 올립니다.)

무상이란 항상한 존재 즉 아트만이 없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우주 법계가 다 변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고란 공이 와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도대체 삶이 고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석가도 일찌기 삶이 고임을 알았기에 고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자 6년간 갖은 고행을 다 했던 것 아닌가요?

그러나 그것으로도 결국 해답을 얻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 허기로 인해 길바닥에 쓰러졌다가 죽 한 그릇 얻어먹고 다시 기운을 차려, 앉아 있던 보리수 나무 아래서 새벽별 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 아닌가요?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공을 깨달았다면 앞뒤가 맞는 얘기지만, 그가 고를 깨달았다는 얘기는 소가 웃을 일입니다. 석가는 그만 두고라도 어느 중생인들 인생이 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고로 불교에서 말하는 삼법인은 무상 고 무아가 아니라 무상 공 무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아라는 건 '내가 없다'라거나 '나라고 할 게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에 대하여 한정하거나 한계 지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나라는 게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 나라는 게 뭘까요?
한계 없고 한정 없는 지금 이대로의 모든 것이 바로 나입니다. 나란 물질 우주를 포함하는 유형, 무형의 모든 것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인 '나'를 우리는
저마다 제 안에 있는 마음의 체로 걸러서 받아들인 다음,
다시 그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 생각과 말 그리고 몸을 통하여 표현되는 행동으로 스스로 자신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고로 나란 내 몸으로 표현되기 이전이며, 내 마음으로 걸러지고 표현되기 이전의 모든 것인 유형, 무형의 우주 전체 즉 신이 곧 나입니다.
이렇게 하나이자 전체인 나는, 저마다 자신 안에 있는 마음의 체로 거른 다음, 스스로 선택한 몸에 담아 약 77억 화신의 모습으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모두 전체이자 신입니다. 다만 마음의 체 즉 자기규정에 스스로 묶여있는 신이므로 스스로 자기규정을 살펴서 없애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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