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 김신타
전화로 하는 대신
손 편지를 쓰기로 했다
서툰 글씨지만
정성 들여 또박또박
한동안 안 나가던 문예 창작반
다시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순전히 바람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오늘은 수강생들만의 수업
한 사람의 주제 발표 끝나면
저마다 써온 시를 읽고
합평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봇물은 합평 진행에서 터졌다
진행자가 앞에 서야 한다는
주위의 요청에도 한사코
뒷자리를 고수하던 진행자
진행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주변의 웅성거림만 들려오자
참을성 없는 내 안의 목소리
이윽고 굉음을 내며 터졌다
진행자가 앞에서 얘기해야지
앉은 테이블 사람하고만 속닥이면
합평 진행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이야 틀린 것 하나 없지만
갇혔던 봇물 터지면서
천둥 치는 소리에 다들 놀랐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
와장창 박살이 나버렸다
나름 억울했던 진행자와
답답했던 내 목소리 사이에
두 번째 여진이 발생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진행자
태풍은 지나갔지만
상흔은 여전히 기억 속에
옹이처럼 박혀 있을 것이다
쉽게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 한 편의 서툰 시가
옹이가 빠진 곳에 고이는
한 모금의 샘물이 되고
쓰다듬는 바람이 되기를
많은 분이 모인 자리에서
함부로 큰 소리 낸 것에 대해,
합평 진행 고사했다는 시인에게
사과하는 마음 담아 쓰는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