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79

힘든 상황이 계속되는 이유

힘든 상황이 계속되는 이유 어릴 적에 회피하고 싶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온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살게 된다. 내면에 있는 진짜 자신은 방치한 채, 밖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자신으로 알고 살게 되는데, 이때 그는 진짜 자신으로부터 기 또는 에너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매우 허약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가짜인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앞에 연속해서 어려운 일이 닥치게 된다. 가짜가 아닌 진짜 자신과 함께해달라는 외침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자 한다. 그러는 동안 흔히 내면 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내 안에 감춰진 나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계..

신의 나툼 (신의 현현 顯現)

신의 나툼 (신의 현현 顯現) 일상이 신이고 기적이 신이다. 신은 특별하지 않다. 평범한 일상과 기적적인 사건 등 모든 게 신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평범과 기적은 뚜렷이 다른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모두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고 해서 그건 일상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건 평범한 일이 아닐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나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신이며, 의식은 동물과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무생물을 비롯하여 심지어 허공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신은 무소부재하다고 하는 것이다. 의식이 허공에는 없고 물체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또는 물체에는 없고 생명체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체 ..

세속과 탈속

세속과 탈속 관념이란 결국 이성으로 이해되고 추론된 사실에 대한 추상적, 복합적 기억이다. 이러한 관념과 감각적 이미지 그리고 단순 기억을 합하여, 우리는 이를 지식 또는 앎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관념, 이미지, 단순 기억이 둘 이상 모여서 복합 기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뇌 속에 있는 기억의 대부분은 복합 기억인 셈이다. 관념과 감각적 이미지의 결합이든지 또는 단순 기억과 이미지의 결합이든지 말이다. 그런데 보통의 지식 또는 앎을 세속적 지식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세속과 탈속으로 나누는 것은 옷 색깔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내면의 앎이 아니라, 옷이나 집 또는 주변 환경으로 그 사람의 앎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어..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뿐. 그러니 생각 이전, 태어남 이전, 존재 이전이니 하는 등의 말은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으며, 이미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는데 생각 이전, 존재 이전을 누가 어떻게 감히 상상할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단 말인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공허한 관념일 뿐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와같이 정에서 반을 거쳐 합으로 가는 것이지, 반에서 다시 정으로 가거나 합에서 도로 반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정반합의 순서대로 가는 것이며, 합은 또다시 정이 되어 계속 순환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생각 이전. 존재 이전. 부모미생전이니 하는, 말하는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공허한 표현일랑은 되도록 쓰지..

기억에 대한 기억

기억에 대한 기억 인식·이성·사유 등등 인간의 어떠한 정신 작용도 기억에 앞서 존재할 수는 없다. 정신 작용은 물론이며 심지어 신체적 움직임도 기억 위에서만 합리적으로 작용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병증인 치매 환자의 예를 들어보면, 자신이 행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의 오류가 발생하곤 한다. 내가 간접 경험한 사례로는, 장롱 위에 돈을 놓아두고는 장롱 안 이불 사이에 넣어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게 바로 기억의 오류다. 그런데 이것이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데도 치매 환자는 계속 기억의 오류를 겪는 것이다. 환자의 딸인 보호자도 어머니인 치매 환자가 이불 사이에 넣어둔 돈을 누군가가 훔쳐 갔다는 하소연을 듣고는 이불을 다 꺼내어 확인하..

의식 그리고 나

의식 그리고 나 내가 아닌 것들은 다들 왔다가 떠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옷이나 집 등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몸조차도 내게 왔다가 언젠가는 떠난다. 최후엔 내 몸이 의식에서 분리가 된다. 의식은 그대로지만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몸과 의식이 분리되는 죽음의 순간, 몸에 있는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의식도 빠져나간다고 믿는다. 즉 몸의 죽음과 함께 의식도 생명의 기운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무지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과 함께 하는 의식이 바로 생명인데 어떻게 생명을 잃을 수 있겠는가? 몸에서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추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살아있다. 의식이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수용과 선택

수용과 선택 내 앞에 있는 모든 걸 사랑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약병과 통증 그리고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슬픔과 허무함까지도 말입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고 난 다음 건강과 활력을 선택하세요. 받아들인다고 해서 받아들인 모든 걸 다 선택할 순 없잖아요. 받아들인 것들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을 선택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다음, 선택하고 싶은 것 하나를 선택하는 거죠. 그냥 모든 걸 무조건 받아들이는 겁니다. 좋든 안 좋든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 좋은 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리고 어쩔 수 없으니까 아예 적극적으로 모든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더 아프게 되..

빨래

빨래 세탁기에서 다 된 빨래를 꺼내다 보면, 검은색과 흰색 옷을 구분해서 넣어야 함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흰옷에 검은색 얼룩이 묻기도 하고 색깔 짙은 옷에 흰색 보풀이 달라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얘기만이 아니라, '백로 모인 곳에 까마귀야 가지 마라'라는 말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백로만 검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까마귀도 하얘지는 걸 싫어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시간 동안 빨래를 해왔으며 세탁기를 쓴 지도 제법 세월이 지났을 텐데, 우리는 여전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소리만 고장 난 녹음기처럼 외우고 있다. 흰색에서 볼 때는 검은 색이 저쪽이지만, 검은색에서 볼 때는 흰색이 저쪽이다. 흰색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검은색..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 돌담에 붙어있는 담쟁이잎뿐만 아니라, 우리 몸도 누구나 마지막 잎새인 것만 같다. 어쩌면 세상이라는 담벼락에 잎새처럼 붙어 있다가, 가을 지나고 겨울 어디쯤 홀로 낙엽 되어 떨어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우리가 낙엽이 되어 그대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몸뚱이는 비록 낙엽처럼 사라져 다른 무엇으로 변할지라도, 우리 의식은 나무가 여전히 서 있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무엇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 스스로 의식하고 있을 뿐이다. 영원히 그리고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 몸과 낙엽도 물질적인 모습을 달리 하는 것일 뿐,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음이다. 몸은 비록 마지막 잎새 되어 땅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나..

육갑 六甲

육갑 六甲 2020년 올해 내 나이가 일갑(一甲)을 지나 세 살인데, 1갑이 육십 년이니 5갑이면 삼 백 년이다. 나는 한 삼 백 년 즉 5갑을 살다가 적당한 때 육갑을 떨지 않고 또 다른 세상으로 가서 태어나련다. 지구상에서 죽는다는 게 곧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며, 거기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병신 육갑한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이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든 채 그래도 오래 살고자 애쓰는 사람을 흉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5갑까지만 살련다. 그것도 몸과 마음에 병이 없을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오갑(五甲)을 사는 중에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존경하는 스콧 니어링 선생처럼 금식을 통하여 언제든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는 월남전 참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