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18

길가에 선 가을

길가에 선 가을 신타 은행잎 간간이 샛노랗고 느티나무 단풍 한창인데 벚나무 벌써 잎이 지고 없다 먼 산 여전히 푸르지만 가로수에 핀 단풍잎 시월처럼 아름다운 까닭은 매연 때문이 아니라 수없이 오가는 자동차의 떨림 음파의 진동 때문이 아닐까 스칠 때마다 전해지는 흔들림 나는 느끼지 못해도 가벼운 그들은 알리라 흔들리는 잎새가 일찍 철이 드는구나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부르기만 해도 눈물 떨굴 듯한 나는 너를 시월이라 쓰고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 읽는다 가슴 시린 시월의 마지막 날 단풍 든 잎새처럼 나는 네 생각으로 흔들리곤 한다

신작 詩 2021.10.30

봄 안부 / 강인호

봄 안부 / 강인호 당신 없이도 또 봄날이어서 살구꽃 분홍빛 저리 환합니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찾아갔을 분홍빛 오늘은 내 가슴에 듭니다 머잖아 저 분홍빛 차차 엷어져서는 어느 날 푸른빛 속으로 사라지겠지요 당신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내 추억도 이제 다 스러지고 말았을지 모르는데 살구꽃 환한 나무 아래서 당신 생각입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저 분홍빛이 그대와 나 우리 가슴속에 찾아와 머물다 갈 건지요 잘 지내 주어요 더 이상 내가 그대 안의 분홍빛 아니어도 그대의 봄 아름답기를 「좋은 생각」 2009년 4월호에서

애초부터 없었던 나

애초부터 없었던 나 우리는 기억 속의 나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왕년에 잘 나갔었지."라고 말할 때의 나는 '과거의 나'이며, 또한 그러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우리는 '현재의 나'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의 나 역시 기억 속에 있는 나일 뿐입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기억 속의 나'가 아니라 기억 자체입니다. 기억 자체, 느낌 자체, 생각 자체가 바로 존재 자체로서의 나입니다. '기억하는 나', '느낌을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아나 참나가 아니라 '기억 속의 나'를 말함입니다. 존재 자체를 자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 속의 나'란 관념으로서의 나를 뜻하..

깨달음의 서 2021.10.29

살며 사랑하며

살며 사랑하며 신타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좋아요 나 그대와 함께할 수 있다면 고통의 삶도 기쁨일 거예요 천국이 지금 여기일 거예요 그대라는 바다 위에서 나는 끊임없는 사랑의 파도이며 잔잔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대와 함께하는 지금 여기 구름 위를 비추는 태양처럼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순수 환하게 타오르는 빛의 향연 영원한 사랑의 빛일 거예요 그대라는 바다 위에서 나는 끊임없는 사랑의 파도이며 잔잔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내가 전체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일된 느낌을 얻을 때,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이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지복至福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救援이다. 전체 즉 신 또는 우주와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거나 육체를 가진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며 무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고해苦海의 삶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地獄의 삶이다. 이와는 반대로 분리가 없어지고 합일된 느낌 또는 하나 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고독감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며, 이게 바로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극락이..

깨달음의 서 2021.10.22

주홍글씨

주홍글씨 신타 어머니! 어머니! 당신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흘러듭니다 '지 애비 닮아서 그렇다.'는 열 살짜리 가슴에 가슴에 새긴 당신의 주홍글씨 어느덧 오십 년 세월이 지난 이제 당신을 탓하고 싶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나를 자책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연두색 이파리에 그어진, 칼자국 이제는 지우고 싶습니다 두 손 마주 잡은 채 서로 무릎 꿇은 당신의 사과는 굳은살이 된 제 상처를 희미하게 그리고 마침내 사라지게 합니다 어머니! 당신의 이름은 아스라이 멀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당신은 제 가슴속에 머무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당신의 손길이 아닌 저 스스로 두려움의 안개를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걷고자 했던 그 길 위에서 저 역시 말이에요 [2014년 자운선가에서 쓰다]

詩-깨달음 2021.10.21

무명 無明

무명 無明 자신의 삶에 닥쳐오는 어떠한 일이든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일 때, 우리는 가없는 평안을 느낄 수 있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제로 일이 닥쳤을 때의 행동이 아니라, 일이 일어날 상황을 미리 가정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이 닥쳤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상 속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 중 대부분은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거부한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게 무슨 일이든 일어난 일은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

깨달음의 서 2021.10.18

서른이 지난 어느 날

서른이 지난 어느 날 신타 원하는 결과만이 아닌 원하는 바가 이루어져 가는 순간순간 과정에 대한 감사함이 오늘 처음으로 느껴졌습니다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깨달음으로 다가왔으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결과와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과정을 겪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 오늘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과가 나타난 때만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과정인 일상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을 때 삶은 사랑으로 빛날 것입니다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토록 원하던 결과 역시 또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오늘 문득 느껴졌으며 결과만을 기다리지 않고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때 웃음과 여유가 생긴다는 것 또한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른이 지나고 다시 서른이 지난 어..

詩-깨달음 2021.10.17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이 구절에서 전도몽상을 한마디로 줄이면 착각이 되며, 원리전도몽상을 쉽게 얘기한다면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에서 벗어나야 착각인 줄 알지, 착각 속에 있을 땐 그게 착각인 줄 꿈에도 모르기 때문에 원리전도몽상이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또한 우리는 구경열반에 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리전도몽상 즉 착각에서 벗어나는 게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을 지을 때 1층을 먼저 짓고 그 위에 2층을 올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착각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까? 착각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스스로 옳다고 여겨지는 생각 또는 관념에서 쉽게 벗어..

깨달음의 서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