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59

의식 그리고 나

의식 그리고 나 내가 아닌 것들은 다들 왔다가 떠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옷이나 집 등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몸조차도 내게 왔다가 언젠가는 떠난다. 최후엔 내 몸이 의식에서 분리가 된다. 의식은 그대로지만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몸과 의식이 분리되는 죽음의 순간, 몸에 있는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의식도 빠져나간다고 믿는다. 즉 몸의 죽음과 함께 의식도 생명의 기운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무지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과 함께 하는 의식이 바로 생명인데 어떻게 생명을 잃을 수 있겠는가? 몸에서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추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살아있다. 의식이 곧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 / 신타 함께 걷고 싶은 너는 멀리 눈 내리는 길 혼자서 걷는 내게 전하는 밤의 속삭임 사랑이란 바이올린 연주 어깨 너머 활과 현의 왈츠 밀고 당기는 기쁨과 슬픔 하얗게 빛나는 어둠 사이로 너와 함께 혼자서 걸어가는 쓸쓸하면서도 포근한 밤길 둘로 나뉘었어도 하나이며 하나이면서도 하나가 아닌 눈송이처럼 내리는 너와 나 눈 내리는 밤이면 하냥 그리워 전철에서 내려 역사를 지나고 공원을 지나도 멀기만 한 안식 여전히 가슴에 서성이는 눈발 쌓이는 흰눈 밟으며 가는 길은 네게로 난 단 하나의 빛이었다

신작 詩 2021.11.30

없음의 있음

없음의 있음 나라는 건 없음의 있음이다. 없음이기에 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내가 존재한다는 말. 말장난이 아니라 참으로 깊이 있는 내용이다. 내 안에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것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그것이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더 확장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들이 더러는, 깨달음도 없고 깨달은 사람도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늘 갇혀 있음을 경계하려는 뜻에서 하는 말일 뿐,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없을 수는 없다. 깨달음도 있고 깨닫지 못함도 있으며, 깨달은 사람도 있고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다. 다음과 같은 비유가 적절할 것이다. 천동설을 믿다가..

깨달음의 서 2021.11.30

수용과 선택

수용과 선택 내 앞에 있는 모든 걸 사랑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약병과 통증 그리고 먼 하늘만 바라보게 되는 슬픔과 허무함까지도 말입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고 난 다음 건강과 활력을 선택하세요. 받아들인다고 해서 받아들인 모든 걸 다 선택할 순 없잖아요. 받아들인 것들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을 선택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다음, 선택하고 싶은 것 하나를 선택하는 거죠. 그냥 모든 걸 무조건 받아들이는 겁니다. 좋든 안 좋든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안 좋은 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리고 어쩔 수 없으니까 아예 적극적으로 모든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더 아프게 되..

식탁

식탁 신타 젊었을 적엔 꽃병이 놓이더니 지금 식탁 위엔 약병만이 줄을 선다 삶의 주소는 꽃병과 약병 사이 혹은 밥과 반찬 그 사이 어디쯤일까 건강이란 근육에 달린 게 아니라 호르몬 분비에 달렸다고 한다 호르몬 분비라면 밥상과 침상 모두가 식탁이다 몸으로 먹느냐 마음으로 먹느냐가 다를 뿐 몸으로 밥과 반찬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으로도 자신과 타인의 육체와 정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이 아니다 꽃병과 약병 밥과 반찬 그리고 몸과 마음 자신과 타인 모두 사랑해야 할 것이다

신작 詩 2021.11.29

물길 바람길

물길 바람길 / 신타 원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따로다 원하는 것은 원하는 것이며 받아들이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음이다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모두를 받아들이되 하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일어나지 않음도 아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뿐이며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외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텅 빈 샘에서 샘물이 솟고 물처럼 바람처럼 길이 된다

詩-깨달음 2021.11.29

텅 빈 바람

텅 빈 바람 신타 바람처럼 머물지 않는 내가 무엇인지 알고자 함은 머물지 않는 바람이자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이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나라는 것은 텅 빈 빛, 텅 빈 침묵 텅 빈 바람, 텅 빈 충만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건만 텅 비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릴까 아무것도 없음이다 아무것도 없음도 없음이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붙들고 싶은 게 살아있다면 그게 빛이든 침묵이든 바람이든 충만이든 붙잡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아니다 그것이 그대일 뿐 아무것도 잡지 않고 모든 것을 놓았을 때 그대는 의지할 것 하나 없는 텅 빈 빛, 침묵, 바람, 충만이 되리라 텅 빌 때부터 모든 게 샘솟으리라 텅 빈 곳에서 그대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詩-깨달음 2021.11.29

가을 장미

가을 장미 신타 봄날에만 피는 꽃인 줄 알았다가 늦가을 어느 날 숲속에서 보게 된 빨갛게 핀 장미꽃 오월의 장미는 깁스한 다리처럼 생각 속에서 굳어진 썩은 뒤에 거듭나야 할 바람에 몰려다니는 낙엽 붙잡아 두지 않아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살아있는 자양분일 뿐 내 곁이 아니라 해도 다른 나무엔들 어떠하랴 내 안에 있는 모든 꽃잎과 낙엽 어느 땅 밑에서라도 거름이 되고 물이 되어 흐르리라 내 안이 아니면 어떠하랴 물이 되어 그대 흐를 뿐인데

신작 詩 2021.11.28

천개의향나무숲 2

천개의향나무숲 2 / 신타 숲에는 띄어쓰기가 없다 향나무와 은목서 등이 빽빽하게 서 있을 뿐 늦가을 어느 빛나는 날 구례 천은사 가는 길옆 작고 조용한 향나무 숲 모처럼 걸어보는 휴일 띄어쓰기 없는 내 삶에 쉼표 같은 아침이었다 천 개의 향나무 숲에서 안으로 담긴 향나무와 밖으로 은은한 은목서 향나무에 은목서 잇댄 안팎으로 향기로운 삶 내가 소망하는 삶이다 아침의 숲길 더불어 쉼표와 느낌표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이고 싶다

신작 詩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