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18

고정관념과 진리

고정관념과 진리고정관념이란 우리 의식 안에 있는 기준에 의하여, 보호받고 존중받는 관념을 말한다. 자신의 의식 안으로 받아들인 관념 중에서도, 우리는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다고 여긴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 형성되는 과정을, 또한 우리는 성인이 되고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준이란 날마다 변하는 것이며, 처음엔 애써서 세웠다가 나중엔 버려야 하는 것일 뿐이다.굳게 그리고 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기준은 고정관념을 낳는 괴물로 변하고 만다. 스스로 옳기 때문에 자신의 관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자신에게만 옳은 것일 따름이다. 모두에게 옳은 이른바 객관적 진리 따위는 없다. 객관적 진리라고 믿는 바가 곧 독단이요 고정관념이다. ..

깨달음의 서 2021.10.16

밤비 내리는 쓸쓸함에 대하여

밤비 내리는 쓸쓸함에 대하여 신타 시월 중순의 가을 밤비 내리는 소리가 차다 생각은 해와 별을 넘나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가을이라 불리는 계절 밤비 내리는 소리는 왜 나를 쓸쓸하게 하는가 왜 나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잦아드는 빗소리에 왜 나는 허전함을 느끼는가 빗소리가 이어지기를 왜 나는 바라고 있는가 우주에 비하여 먼지보다 작은 몸뚱이가 아닌 우주를 품는 무형의 존재임을 왜 우리는 깨닫기 어려운가 밤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쓸쓸함에 대하여 시를 쓰는 내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임을 왜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가 보이는 몸뚱이가 아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쓸쓸함을 느끼는 것임을 왜 우리는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가

詩-깨달음 2021.10.16

소국

소국 신타 늘 지나다니는 동네 담장 옆에 가을이 열렸다 무더기로 담쑥하게 핀 국화꽃 흐린 기억 속에 담긴 누나를 닮은 하얗고 노란 들국화 열 살도 안 된 나이 엄마의 부지깽이를 피해 부엌 문턱 넘어가려다 넘어지고 매를 맞던 모습은 정작 본인은 잊었다지만 옆에서 본 내겐 오랜 상처로 남은 서른이 지나고 다시 서른이 지난 세월의 씻김에도 소국을 읽는 순간 눈물이 번진다 그립고도 아픈 시절 엄마와 누나와 어린 나 그리고 먼 곳의 아버지

신작 詩 2021.10.15

육갑 六甲

육갑 六甲 2020년 올해 내 나이가 일갑(一甲)을 지나 세 살인데, 1갑이 육십 년이니 5갑이면 삼 백 년이다. 나는 한 삼 백 년 즉 5갑을 살다가 적당한 때 육갑을 떨지 않고 또 다른 세상으로 가서 태어나련다. 지구상에서 죽는다는 게 곧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며, 거기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병신 육갑한다'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이는 몸과 마음에 병이 든 채 그래도 오래 살고자 애쓰는 사람을 흉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5갑까지만 살련다. 그것도 몸과 마음에 병이 없을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오갑(五甲)을 사는 중에 몸과 마음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존경하는 스콧 니어링 선생처럼 금식을 통하여 언제든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는 월남전 참전에..

부처와 그리스도

부처와 그리스도 생각하고 기억하며 오감을 통해서 느끼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즉 참나다.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니라 몸뚱이라는 수단 내지 도구를 통해서, 무형의 내가 생각하고 오감을 느끼며 기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뚱이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나 즉 우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는 감각 즉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촉감과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에 의해 한정되는 지구상에서의 삶을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무형의 영혼인 내가 선택한 것으로,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며 상대적인 한계를 지닌다. 한계가 있지만 모험 가득한 스릴 넘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사는 지구상에서의 육체적 삶이다. 고로 우리는 육체적 삶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즉 육체가 100년 ..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카카오 스토리(이하 카스)에 뜬, 6년 전 오늘 내가 올린 글을 보다가 친구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딱 1년 전인 작년 가을에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링크된 그녀의 카스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자신을 빼닮았다며 유난히 좋아했던 손녀 사진과 함께 그녀가 웃고 있다. 인터넷이 없던 우리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그녀의 사진을 보다가 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얼마쯤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리가 있기는 하는 걸까? 그녀는 지금 내 안에 있는데. 예전 같으면 사후 세계를 지하 어디쯤 있는 음습한 곳으로 상상했겠지만, 책과 인터넷을 통해서 임사체험에 관한 정보를 여러 번 접해본 나로서는 이제 정반대의 상상을 한다. 사후 세..

이 편한 세상

이 편한 세상길을 지나다 보면 e편한 치과, 속편한 내과 등의 간판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런데 그러한 병원 그리고 아파트 이름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정말로 이 편한 세상이라면 어찌하겠는가?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한숨만 내쉬겠는가? 물론 이 편한 세상이라고 느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밀려오는 절망과 두려움을 희망으로 덮으려 하거나 또는 회피라는 기제를 통해서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희망과 절망 그리고 기쁨과 고통이 교차하는 세상이 아닌, 절망 속에서 희망이 샘솟고 고통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절망감과 두려움을 반사적으로 그리..

깨달음의 서 202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