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 27

무형의 실상

무형의 실상 신타 남과 대비되는 내가 생각하고 말하며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믿음이 무의식중에도 있었다 남과 대비되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한 모든 일을 행한다는. 나라고 할 게 없다는 종교에서의 높은 가르침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내가 있는데. 한편으로 나라는 건 몸으로 된 유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이라는 자각, 내 몸이 내면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는 깨달음. 나는 어디에도 머물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이 몸뚱이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라니 내가 있을 곳은 어디란 말인가 몸 안팎의 우주도 아닌 시간도 공간도 없는. 또한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 생각 속의 관념일 뿐이다 지금까지 흔들린 적 없었던 뿌리 깊은 믿음일지라도 남과 대비되는 또는 비교되는..

詩-깨달음 2021.09.29

진리

진리 신타 모든 것이 착각이다 어차피 생각이란 나만의 것 고로 모든 생각은 저마다의 착각이며 우리는 이를 주관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은 주관이다 주관 속에 객관이 있을 뿐 주관을 벗어난 객관이란 있을 수 없다 다수의 주관을 객관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 또한 주관 속의 객관 아니던가 착각이든 생각이든 주관이든 객관이든 우리는 주관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주관 속에서 객관을 논할 수 있음이다 고로 진리는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다 주관이 모여서 객관이 되지만 주관이란 늘 변하는 것 따라서 '모든 게 진리다'와 '진리란 없다'가 동시에 진리다

詩-깨달음 2021.09.29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신타 정의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무소불위의 폭군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으로 포용하는 웃음 띤 선한 이웃이 되리라 오직 그 하나만 믿고 순종해야 하는 종 또는 하인을 사랑하는 신이 아니라 나를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인간이 되리라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 일어난 것이며 내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나를 위해서 지금 일어나는 것이리니 범사에 감사하리라 나와 이웃과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랑으로 감싸 안으리라

詩-깨달음 2021.09.29

달래모란

달래모란 / 김신타굳이 가시겠다면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리지는 못할지라도당신의 치맛자락 붙잡진 않으리오그렇다 해도 당신 없는 계절은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일 뿐나는 당신만을 바라보는기꺼운 해바라기 되려 하오굳이 가시겠다면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약산 진달래꽃 아닐지라도앞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당신이 가고 나면나는 봄을 여읜 슬픔에삼백예순 날 하냥 눈물지을 터모란이 피기까지 나는당신과 함께 찬란한 봄이리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부분 인용[구례문학 제 30호(2021년) 상재][춘향문학 제 4집(2021년) 상재]

달무리 진 밤

달무리 진 밤 신타 산길 오르다 보니 둥근 달 옆에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나뭇가지 그림자도 설움이며 스치는 바람조차 아픔입니다 환한 웃음 옆에 눈물 한 방울 별이 되어 떨어질 듯하고 어둠 속에 감추어진 눈물 별처럼 반짝입니다 달무리 진 밤, 내 사연은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애써 참는 나뭇잎이 전하는 달빛 그리움에 나도 그만 눈물짓고 맙니다 (자란 김석기 2009)

소유의 패러다임

소유의 패러다임 신타 등산이나 여행 가고자 할 때면 아무렇게나 둘러매던 배낭 돈 주고 산 것이기에 타인으로부터 내 것임을 인정받았기에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소유로 여겼다 넣을 게 많을 땐 조금 더 컸으면, 적을 땐 조금 더 아담했으면 그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곤 했으나 내가 누구의 소유가 아니듯 그도 내 소유가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사랑으로 히말라야 같은 고봉은 산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등산 배낭도 지금까지 그가 허용했기에 쓸 수 있었던 것임을 나는 소유에 대한 패러다임의 혁명을 느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듯 배낭도 세상에 존재하며 이 세상 무엇도 누구의 소유가 아닌 모두가 홀로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를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며 그에..

詩-깨달음 2021.09.23

사랑의 용광로

사랑의 용광로 / 김신타 그와 그녀 남자와 여자는 살로써 살을 느낀다 손에 걸리는 것 하나 없는 몸뚱이가 비록 꿈 같고 이슬 같고 환영 같다 해도 지금은 실존이 아니던가 언젠가 안개처럼 사라질지라도 헤어지고 나서도 여운이 느껴지는 감촉 마른오징어처럼 여전히 씹히는 기쁨 20대 탱탱한 과육이 40대 원숙함에 절여지고 60대 이르러 효소가 되었는지 영육간에 걸림이 없다 우리는 돌아온 청춘 기준이 있지만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로의 잣대에 구속되지 않는 다시 태어나는 순수함 육체적 사랑을 신의 선물로 영적 사랑을 영혼의 기쁨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깨어남 그곳에 삶의 기쁨이 있다 홀딱 벗은 침대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사랑 불안도 미움도 녹여 없애는 신성 가득한 용광로

패러다임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 / 신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 시인의 시구를 보는 순간 터진 웃음은 잠시 후 통곡으로 변했다 스스로 못난 놈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 참으로 오랜만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유연하면서도 금강 金剛과 같은 가치관 내면에 세우고자 애를 썼던 내 청춘은 폭풍 같은 열정보다는 우울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서른이 지나고 또다시 서른이 지난 즈음 모든 걸 포기한 그곳에는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과 함께 히말라야 정상에서의 하산이 시작되었다 더는 추구할 게 없는 여정이지만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오를 때와 다를 바 하나 없다 모든 게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순 지동설이 체득되는 게 아니듯 나의 깨달음은 새로운 화두로 이어졌다 ..

詩-깨달음 202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