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깨달음 272

무형의 공간

무형의 공간 / 신타 현실은 현재가 아니고 지나간 과거에 일어난 지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말 맞다 이미 닥친 현실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은 미래에 대한 상상일 뿐 현재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는 것이며 미래란, 지금 여기서 내가 행하는 상상이거나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내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게 바로 과거이자 현재이며 지금 내가 행하는 모든 상상이 바로 미래이자 현재일 따름이니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따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통째로 지금 여기 함께하는 것이다 생각으로 구분하는 것일 뿐 우리가 생각으로 구분하는 것일 뿐 시간은 어디에도 나뉘어 있지 않다 공간과 함께하는 보이지 않는 공간 수평선 아득한 무형의 공간인 것을

詩-깨달음 2021.12.18

지금 여기

지금 여기 / 신타 온 길을 돌아보아도 지난 일을 반성해도 언제나 지금 여기서 행하고 있는 것일 뿐 일을 해도 길을 걸어도 여행길에 나섰다 해도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일 뿐 지금 여기에서 잠들고 꿈을 꾸며 아침을 맞는 숱한 흔들림 속에서도 미동도 없이 흘러가는 이제는 그만 자각해야 할 안식과도 같은 보금자리 수없이 스쳐간 지금 여기 지금도 나를 스치고 있다

詩-깨달음 2021.12.17

첩첩 산그리메

첩첩 산그리메 / 신타 가까이는 어둠이지만 어둠의 절벽이지만 산그리메 너머엔 먼동이 터온다 붉은빛 가득 지금은 절망이지만 절망의 심연이지만 심연 깊숙한 곳엔 절망조차 없다 희망과 절망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모든 게 있기 때문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을 때 절망처럼 희망이 피어오른다 어둠 속 절벽에 뻗은 나뭇가지 희망이라는 손을 놓쳤을 때 한 손으로 쥔 절망조차 놓아라 절망의 심연에서 희망이 먼동처럼 붉게 번져오리라 「사진 : 이흥재 사진작가 작품 촬영」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이흥재 사진전에서

詩-깨달음 2021.12.17

단 한 벌의 옷

단 한 벌의 옷 / 신타 단 한 벌뿐인 옷이기에 손과 발이 되어 움직이는 단 한 대뿐인 자가용이기에 나인 것처럼 지켜내고자 한다 옷이 해져도 차가 고장 나도 기워서 입어야 하고 고쳐 써야 할 숙명이다 더러워진 옷은 세탁기에 해진 옷일랑 수선집에 그리고 고장 난 자동차는 정비소에 맡겨두자 함께하는 숙명이라 해서 그것이 나인 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하지만 때가 되면 버려야 할 껍데기일 뿐이다 꿈속에도 살아있고 깨어서도 살아있는 별처럼 태양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욕망인 나는 날마다 옷을 입은 채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영원히 살아있는 알맹이 꺼지지 않는 불빛이다

詩-깨달음 2021.12.14

울고 웃는 오로라

울고 웃는 오로라 / 신타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는 우리는 모두 환상적인 오로라 북극에서만이 아니라 적도에서도 사막에서도 바다에서도 산정에서도 언제나 볼 수 있는 오로라 진실할 때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거짓일 때는 추하게 보이기도 하는 악수하며 인사하다가 돌아서서 싸우기도 하는 늘 보게 되는 일상이지만 그래서 환상적인 풍경이다 단단한 바위가 날마다 출렁이는 물결이며 끊임없는 세월이 하나의 운동장이라는 사실 내리는 눈송이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세상을 사는 오로라는 언제나 무상 無常하다 무상하기에 아름다우며 환상으로 보이는 것임에도 환상은 허상이라고 착각한다 환상적인 오로라는 실존임에도 세월이 무상한 게 아니라 우리 몸이 무상한 것이며 인생이 무상한 게 아니라 마음이 무상한 것일 뿐인데

詩-깨달음 2021.12.08

무형의 상

무형의 상 / 신타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자 생각은 하면서도 우리는 마음속에 멋진 동상을 세우고자 한다 오래 간직하고픈 무형의 상을 조각한다 나란 무형도 아닌 아무것도 없음이거늘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워야 하거늘 오히려 무형의 집을 짓는다 담을 쌓지 않고 벽을 세우지 않을 때 젖과 꿀이 흐르리라 웃음과 인정이 넘치리라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리라 자유의 물결이 파도치리라 집을 허물고 담장을 부수며 동상조차 없애버리자 우리는 무형의 상이 아닌 춤추는 허공이자 그림자 없는 빛이다 아무것도 없음이 곧 모든 것이자 전체다 아무것도 없는 내 안에서 모든 게 나온다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까지도 엄청난 죽음조차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생의 끝에 서 있는 절벽 같은 죽음이란 1막 끝나고 2막 시작되..

詩-깨달음 2021.12.08

갈증이 사라지다

갈증이 사라지다 / 신타 나를 모르는 끝없는 목마름 사막을 걷는 듯한 방 안에 갇힌 듯한 알 수 없는 답답함은 참기 힘든 갈증이었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제 꼬리 잡으려는 것처럼 모든 것 포기한 채 가만히 주저앉았다 절망조차 사치였다 희망 아니면 절망이라는 어리석고도 오래된 공식 희망도 절망도 내려놓았다 희망이 없는 모든 것 놓은 자리 오히려 절망이 사라졌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두려움의 벽이 사라진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여기 아무것도 없음인 내가 모든 것이기도 한 지금

詩-깨달음 2021.12.08

변치 않는 어리석음

변치 않는 어리석음 / 신타 생수 한 병이라도 마시지 않고 그냥 버리면 죄가 되고 벌 받을 거라는 생각 착하고 선한 게 아니라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 뿐이다 생수 한 병 그냥 버린다고 해서 악한 사람인 건 아니므로 작은 것도 아껴야 하지만 죄와 벌이라는 고정관념은 쓰레기통에 아낌없이 버려야 할 벌 받을까 봐 벌벌 떠는 모습이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 곰팡이 핀 낡은 생각일 뿐이다 세상의 변화에는 스스로 적응하면서도 내면의 생각은 변치 않는 착하고 선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일 뿐인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詩-깨달음 202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