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깨달음 272

나는 거울

나는 거울 / 신타 유리에 은판을 덧대어 거울을 만든다고 한다 유리엔 형상이 담기지 않지만 거울은 모든 형상을 담아낸다 뒷면이 막힌 유리가 거울의 형상이라면 형상에 성질이 배어있을 뿐 유리는 있어도 거울은 없다 모든 걸 담아 비추는 게 거울의 성질이자 작용이며 없지만 있을 수밖에 없는 작용이 곧 거울의 성질이다 살과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의 몸을 만든다고 한다 몸엔 기억이 담기지 않지만 나는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 생기 넘치는 몸뚱이가 나를 둘러싼 형상이라면 형상에 본질이 배어있을 뿐 나는 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기억 담아내는 게 나의 본질이자 작용이지만 없음이자 동시에 있음인 작용이 곧 나의 본질이다 거울이라고 이름하는 것일 뿐 유리는 있어도 거울은 없으며 몸은 있어도 나는 있지 않은 본질..

詩-깨달음 2022.01.18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옆구리가 붙은 샴 쌍둥이]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 신타 가만히 들어보면 숨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돌아보면 숨을 쉬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반응을 하곤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코에 나는 냄새에 따라 입안에서의 맛에 따라 몸에 닿는 촉감에 따라 의식되는 기억에 따라 그리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들리는 소리와 말의 의미에 따라 우리는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헛소리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귓가에 총알이 스치고 가까이에서 비명소리가 들려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 하러 두꺼운 사전 뒤적이며 말을 배우고 글을 깨우친단 말인가 모자라는 깨우침이며 어리석은 가르침일 뿐이다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는 ..

詩-깨달음 2022.01.15

메기

메기 / 신타 미꾸라지 양식장에는 아귀 같은 메기가 있어야 진흙 속에 힘껏 처박혀 숨고 마릿수가 줄 것 같지만 오히려 쫓기면서 몸피가 미끈해진단다 내 삶의 메기는 무엇일까 고해와 같은 삶이 아닐까 속절없는 세월이 아닐까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은 현실 도피를 꿈꾸게 했다 메기가 잠시 사라지는 때 권태가 그 자리를 메우는 쫓겨 다니는 삶이 아니면 지겨운 삶일 때도 있었다 가끔은 우울도 스며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때 모든 걸 포기할 때 있었다 그래도 절망만은 결단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절벽에서 마지막 한 손은 놓지 못했다 메기처럼 다가오는 불안 이제는 거부하지 않으며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절망조차 포기하는 용기 남은 한 손마저 놓아버렸다 절망 대신 희망이 아니라 희망도 절망도 붙잡지 않는 상상 속의 절벽을 ..

詩-깨달음 2022.01.14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 / 신타 빅뱅이란 바늘 끝 작은 점에서 일순간 우주로 변하는 대폭발 고로 우주의 시작은 점이 아니라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인 것이다 잘라낼 수 없는 점과 선과 면이란 영(0)과 같은 개념일 뿐 점에서 면까지 모든 건 입체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 유클리드 기하학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란다 0(zero)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 그는 최상의 표현을 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점은 입체이자 점은 영임을 뜻한다 별을 바라보면서도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며 실재하는 모든 건 입체일 뿐이다 선에서 면과 입체까지 모든 게 점에서 시작되나 점과 선 그리고 면이란 실체가 아닌 이데아 크기가 작으면 점이며 거대하면 우주라고 하지만 점은 입체 안에서 0과 같..

詩-깨달음 2022.01.12

우주,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 나를 위해 존재하는 / 신타 맞은 편에 지나가는 사람 얼굴 왜 저렇게 생겼을까 하다가도 나를 위해서 저 모습이라는 생각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다 가는 길을 막아놓은 차 왜 이리 세워놓았을까 짜증이 나다가도 나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라는 생각 거기 세워진 게 아무렇지 않다 모든 게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를 위해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할 일을 마친 셈이다 내면에서 바뀌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우주 곧 나인 것이다 내가 바뀔 때 내 앞의 현실까지 더불어 바뀌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詩-깨달음 2022.01.11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불교의 공 사상이나 도교의 노장사상 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진 글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두려움이 사라지며, 또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채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잠자고 배설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이다. 거기에 정신적인 욕구까지 더해서. 물론 두려움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자유를 느낄 수 있지만, 두려움을 없앤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없애고자 하는 대상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오히려 껴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라는 게 없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며,..

詩-깨달음 2022.01.10

나란, 기억에 지나지 않는

나란, 기억에 지나지 않는 / 신타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조차 아는 게 없을 순 없는 일 앎을 내려놓을 수 있고 비울 힘이 있어야 한다 본래면목이란 텅 빈 침묵 바탕이 드러나지 않는 바탕없는 바탕이자 아무것도 없는 근원 아무런 바탕이 없기에 모든 게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나란, 하나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 내가 만약 댓잎 소리라면 바람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가 만약 하늘빛이라면 파란빛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은 같은 걸 새롭게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기억이란 가능성을 막아서는 스스로 문을 잠그는 문지기 나란, 기억에 지나지 않는 바탕조차 없는 근원이다

詩-깨달음 2022.01.08

사랑, 그곳에서

사랑, 그곳에서 / 신타 모든 걸 다 받아들인다 해도 바라는 바는 사라지지 않으며 나는 백지 또는 중도 위에서 내가 바라는 바를 선택한다 다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쫓기거나 피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로부터 내가 피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직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선택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임을 나는 소망하고 기도할 뿐이다 기쁨과 사랑과 감사함 속에서

詩-깨달음 2022.01.08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신타 헤밍웨이 소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제목 그대로 자문자답하고자 한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릴까 집단도 개인도 아닌 모두를 위해 울릴 뿐이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위해 존재한다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모두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위한 일일까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없다 휴대폰 메모리 용량 부족으로 화면이 꼼짝 않는 일이 생기는 것도 나를 위해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 나를 위한 일 찾는 것도 나를 위한 게 아닌 일 찾는 것도 모두가 다 부질없는 헛수고일 뿐 모든 건 나를 위해 일어나고 있다

詩-깨달음 2022.01.06

해탈

해탈 / 신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게 해탈일 뿐 아무것도 없음이란 깨달음을 통해 알아가는 없음인 자신을 홀로 깨닫는 것 내가 본래 아무것도 없음인데 없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 없음을 자각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자각하는 것 일부러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저마다 자신을 기억하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깨닫게 될 때 저절로 찾아오는 자유로움 깨달아 기억을 되찾는 일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며 그게 바로 해탈로 가는 길

詩-깨달음 202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