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사랑의 느낌 37

야외에서

야외에서 김석기 어둠으로 옷을 갈아입은 너는 나와 함께 밤의 이불을 덮는다 어쩌다 스치는 차량의 불빛이 어둠을 들출 때면 바람에 날리는 치마처럼 가볍게 부끄럽지만 겉으로 드러난 치마 속은 참을 수 없는 시원함이다 모래성을 쌓은 아이처럼 너의 기쁨은 허공 가득 향기로 피어오르고 나의 가슴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온누리에 번진다 온누리에 번진다

호수의 계절

호수의 계절 김신타 잔잔한 가슴에 두 손 적시던 그대 날마다 깊이 부르던 사랑의 이름 떠나고 난 가을은 낙엽이 되었다 추억과 아픔이 무시로 교차하던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아름다웠던 만큼 상처가 깊었다 다시금 맑게 비치는 호수의 계절 아픔도 고마움이어라 상처도 감사함이어라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사랑으로 가슴을 출렁이랴

사랑의 변명

사랑의 변명 김석기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내가 필요한 때가 아니며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내게 필요한 때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랑을 동시에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를 사랑한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다 너로 인해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가깝다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필요로 할 때 우리 다시 만나자 지금은 아니다

병이 도지다

병이 도지다 김석기 술 마신 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병이 오십 넘은 나이에 다시 도지다 스스럼없는 지인과 함께 장터에서 국밥 먹으며 마신 탁배기 한 잔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그대에게로 향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러나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 조심스러워 들썩거리는 찻주전자 뚜껑 속 차오르는 뜨거움은 찻잔에 나누어 담고 남은 온기를 두 손에 모아 한 모금씩 가슴으로 되새겨본다 눈부시지 않게 빛나는 어머니처럼 격정적이지 않은 나타냄과 뜨겁지 않은 따스함의 사랑을

사막을 걷는 태양

사막을 걷는 태양 김석기 살아가는 동안 그대와 친구 되고자 함은 지나친 욕심인가요? 그대의 단절에 나는 바닥을 드러낸 거친 계곡이며 그대의 침묵에 나는 사막을 걷는 목마른 태양입니다 그대가 구름이요 비라면 나는 그대의 부드러운 가슴에 포근히 안기는 갓난아기이며 그대의 넘쳐흐르는 사랑에 뛸 듯이 기쁜 어린아이입니다 나는 지금 구름처럼 앓고 있는 그대 위해 기도하는, 비처럼 그대 사랑 쏟아지길 못내 기다리는 바닥을 드러낸 계곡이며 사막을 걷는 태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