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유언 나 죽거들랑 화장을 하여 한 줌의 재마저도 땅에 묻지 말고 강물에 뿌려주오. 다만 내 이름자 새겨진 나무나 돌, 대신 묻어 두고 나를 기억하는 이 있다면 누구든지 찾아와 소풍 온 듯 놀다간다면 좋겠습니다. 살아서도 자유롭고 싶으며 죽어서도 무덤 속에 갇히고 싶지 않은 나는 살아 있을 때에.. 詩-그리고 또 2005.07.11
나무 밑에서 나무 밑에서 비 그치고 난 뒤 가로수 밑에 세워둔 자동차에 손에 든 꾸러미를 싣고 있자니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놀라 고개 들어보니 비에 젖어 촉촉하게 빛나는 아스팔트 길 접어든 우산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들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나뭇가지 등 거리의 풍경은 여전히 잔잔한.. 詩-그리고 또 2005.07.10
7월 첫날의 장마비 7월 첫날의 장마비 오늘 아침엔 멀리서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던 천둥소리가 갑자기 발톱을 세워 눈을 할퀼 듯 귓가에서 비명을 지른다. 바로 옆에서 툭 떨어지는 천둥소리에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하다가 볼일이 있어 우산 들고 시내로 나오니 악을 쓰며 소리쳐도 듣지 .. 詩-그리고 또 2005.07.01
새로 만든 화단 새로 만든 화단 엊그제 옮겨 심은 목련 단풍 동백 그리고 화단 주위에 둘러쳐진 관목들 때맞춰 내린 유월의 장마비에 덮인 흙이 촉촉하다. 이들도 무엇인가 운명을 타고났으며 이 세상에 태어나 어쩌다 이곳으로 옮겨졌다 해도 어디에서든 때가 되면 목련은 청초한 봄을 피워내고 단풍은 가을을 붉게 .. 詩-그리고 또 2005.07.01
산삼 (山蔘) 산삼 (山蔘) 인적없는 산중에 자연스레 떨어진 몸 그늘지고 낙엽에 덮여 뿌리를 내리며 세월이 흘러 안으로 생명의 물이 고이고 때가 이르매 물이 생명을 살리게 되리라 땅의 온기와 하늘의 서기가 모이고 몸의 기운과 마음이 하나로 흐르니 해와 달이 번갈아 비추고 지나가며 비와 바람이 자리를 정.. 詩-그리고 또 2005.06.25
레커차 레커차 경광등을 번쩍이며 도로를 질주하는 레커차 날렵한 그의 움직임에 경의敬意를 보낸다 응급차보다 경찰차보다 더 빨리 내달리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운 생명을 먼저 구하고 이어질지도 모르는 사고를 미리 막고자 함이 아니라 돈 덩어리를 앞서 주우려는 마음이라면 레커차의 질주를 부르는 돈.. 詩-그리고 또 2005.06.22
버스정류장 휴지통 버스정류장 휴지통 쓰레기 종량제 이후 실종된 길거리 휴지통 늦게 배운 담배, 꽁초 버릴 곳이 없다 차마 길에 버리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는 종이조각 놔둘 곳이 없다 어쩌다 버스 타려고 정류장에 가면 그곳에 은빛 휴지통 늘 웃음 띤 얼굴이다 담배꽁초 하나 휴지조각 하나라도 길거리에 버리지 않.. 詩-그리고 또 2005.06.08
반가운 것들 반가운 것들 작게 구겨진 껌종이 버릴 곳 찾다가 눈에 띈 '나는 오래전부터 여기에 늘 있어요.'라고 말하는 휴지통 혹 내가 오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버리지는 않았나 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때 저만치서 다가오는, 일터에 시간 맞춰 출근하기 위하여 타게 되는 버스 추워진 가을 아침, 출근한 .. 詩-그리고 또 2005.06.04
여유 여유 작은 책 한 권 넣을 수 있을 만큼만 호주머니가 크다면 틈나는 대로 책을 꺼내어 읽을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좁디좁은 내 마음은 이 좁은 틈만큼이라도 더 커질 수 있으리라. 이 작은 책만큼이라도 더 깊어질 수 있으리라. 자란 김석기 詩-그리고 또 2005.06.01
눈물 눈 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슬픔이며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은 설움입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연민이며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은 아픔입니다 하늘을 보면 괜스레 눈물나는 건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때문이며, 다른 이의 눈물에 같이 눈물짓는 건 그의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 詩-그리고 또 200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