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2 생명 2 혼자 먹을 점심상 차리려고 찜 솥을 열어보니 죽어서도 꼿꼿하게 앉아 나를 향한 대게 한 마리 다행히 눈동자가 죽어 있다 생명이 생명을 낳지만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사는 법 기다란 대나무 다리로 그도 많은 생명을 먹었을 터 나도 이제 그의 생명을 먹고자 한다 언젠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 詩-그리고 또 2006.02.05
나는 서 있을지라도 나는 서 있을지라도 뱃전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달이 흔들리고 별이 춤춥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일상의 하늘에서도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집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어리석은 나는 한참 동안을 해와 달과 별은 왜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자꾸만 움직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 詩-그리고 또 2006.01.17
노동의 아침 노동의 아침 동지가 지나고 며칠, 아침해가 조금이지만 확실히 빨라졌다는 통근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겨울 날씨의 세상살이가 한 뼘이나마 짧아지기를 바라는 춥고 어둑한 아침 7시 통근버스 시간이 환하고 따뜻한 얼굴의 봄으로 하루라도 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하루도 결근함이.. 詩-그리고 또 2006.01.17
동백꽃 삶 동백꽃 삶 여름 내내 가으내 말이 없던 동백꽃이 한겨울에 입을 열었다 입술 크게 벌리고 핏빛 외침을 속삭인다 여명을 밟으며 일터로 가는 막노동꾼에게, 가로등 켜져 있는 도로 옆 양철통 안 나뭇가지 불 지피는 노점상인에게, 찬바람에도 꽃은 피며 한겨울에도 붉은 삶이 타오름을, 돌아오는 세월.. 詩-그리고 또 2005.12.10
귀가 귀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밝은 가로등 불빛 아래 노점에 진열된 사과며 배 홍시 단감 모과 등등이 도심의 가을을 채색하고 있다 환하게 불켜진 가게 안을 바라보기도 하며 안개와도 같이 내려앉는 어둠을 천천히 헤치며 간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발걸음이 힘겨운 줄 모르고 흐르듯 가고 있다.. 詩-그리고 또 2005.11.04
가을 수채화 가을 수채화 고개 숙인 채 걸어도 눈은 땅을 쳐다보지 않으며 낙엽을 밟으며 걸어도 마음은 손에 들고 바라봅니다 느릿한 걸음으로 무언가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가을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낭만의 쓸쓸함과 여유로운 고독이 낙엽 되어 떨어집니다 이맘때면 늘 수채화를 그리는 가을은 거.. 詩-그리고 또 2005.10.14
담배 한 개비의 위안 담배 한 개비의 위안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겨운 것일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될 때 허공에 날리는 한 모금의 담배연기는 편안한 친구이기도 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처럼 누군가가 내뱉은 한 마디에 멍드는 가슴은 힘껏 빨아들이는 담배 한 개비가 커다란 위안이기도 하다 구월.. 詩-그리고 또 2005.09.24
동심 동 심 밝은 햇빛 속에서 냇가의 작은 돌을 만지거나, 철삿줄과 쇳도막을 이리저리 맞추던 어린 시절 보이는 것은 새롭고 만지는 것은 신기하던, 생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던 그 시절 자란 김석기 詩-그리고 또 2005.09.19
한 잔의 추억 한 잔의 추억 선착장에 매여 있는 한 마리 고깃배 그 속에서 숱한 고기가 튀어나온다. 꼬시라기 낙지 붕장어 꼴뚜기 어부의 바쁘고 거친 일손 위에 몇 마디 농담을 던져 횟감으로 이것저것 한 대야 얻다. 잠바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낸다. 꼬시라기가 고소하다. 한 잔 속에 추억이 지나간다. 열두 가지.. 詩-그리고 또 2005.09.19
술 취한 날 술 취한 날 쏟아지는 빗속을 술에 취해 바람처럼 흔들린다 어느 새 곁을 지나간 세월의 나무 한 그루 술 취한 어깨에 붙잡고 씨름한다 다시 돌아오라고 같이 가자고, 천천히 자란 김석기 詩-그리고 또 200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