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194

깨달음의 소리

1. 소리라는 게 사실은 귀에 있는 고막을 지나야 소리로 변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공기의 진동일 뿐이며, 형상과 색상도 빛이 눈에 있는 망막을 지나야 비로소 형상과 색상으로 인식되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빛의 반사일 뿐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거나 듣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시일이 지나면서 문득 자각되었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조차도 저절로 생기거나 일어나는 것이지, 우리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거나 감정을 일으키는 게 아닙니다. 2. 우리는 흔히 자신 앞에 펼쳐진, 눈에 보이는 자신의 몸을 비롯한 현실의 물질세계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실제로 벗어나야 할 대상은 보이지도 않고 감각되지도 않는 관념의 세계입니다. 달..

깨달음의 서 2023.04.22

수용이란

수용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이든 좋아하지 않는 것이든, 모두를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자세이다. 그리고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악은 멀리하고 선은 가까이하는 게 아니라,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과 악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바깥 즉 세상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객관이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진리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객관이란 역사를 통틀어 결코 없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깨달음의 서 2023.04.11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표현을 이제는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똑같이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한자로 된 문장을 한글로 다시 바꾸어 해석해야 하는 부담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기에 한자보다 오히려 더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음미해 보라. 우리는 지금까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고정관념에 젖어 생활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감각되는 유형의 것들은 모두가 변하고 언젠가는 모습조차 사라진다. 이게 바로 '있음의 없음'이다. 또한 없다는 것의 개념을, 없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없다는 것 즉..

깨달음의 서 2023.02.24

텅 빈 기억

텅 빈 기억 '기대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포기라는 절망' 또한 포기하는 것.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 즉 양변을 여의는 것이며, 내려놓음이자 내맡김이다. 자신이 무엇을 한다거나 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이블에 나오는 다니엘 이야기에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넣어졌을 때 그가 희망을 가졌겠는가? 그 순간 그는 희망을 버리고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긴 것이다. 다만 평범한 우리들처럼 희망 대신 절망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절망조차 기꺼이 내려놓고 오직 신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 것이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말이다. 희망도 절망도 모두 버릴 때 즉 포기할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대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포기라는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포기..

깨달음의 서 2022.12.21

깨달은 사람이란

깨달은 사람이란 외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어린아이가 되기 시작한다. 내면이 변함에 따라 외면도 점차 따라서 변하겠지만, 우선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내면에서조차 어린아이가 되는 게 아니라, 성인의 인식과 아이의 인식이 병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장하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어린아이 때의 인식이 되살아나, 성인이 된 지금의 인식과 병렬로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게 되면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다만 어릴 때와는 달리 논리가 정연하다. 근대의 선승이라 일컫는 경허 선사의 기행 중에, 제사도 지내기 전에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을 거두어 배고픈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도, 분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제주 즉 망..

깨달음의 서 2022.09.18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감각과 기억의 세계 그리고 깨달음 우리 인간에게는 인체의 오감에 의한 감각이 있으며, 그러한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의지적 행동 등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는 매몰되어 있다. 매몰이라는 표현보다는 몰입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 色受相行識의 수렁에 빠져있음이다. 더욱이 자신이 감각에서부터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기억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채 살아간다.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생각·행동과 이러한 색수상행에 대한 '인식된 기억'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레 몰입되는 감각적 세계와 감각 세계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정과 생각, 행동 그리고 인식과 기억이라는 세계에서..

깨달음의 서 2022.08.18

깨달음 후에 일어나는 일

깨달음 후에 일어나는 일 1. 서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은 모두 하나의 바탕에서 일어납니다. 시각의 바탕이 따로 있고 촉각의 바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모두가 하나의 바탕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각과 청각 또는 시각과 후각, 미각과 촉각 등등, 어느 하나의 감각과 다른 감각을 동시에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것도 청각과 시각이 순간순간 교대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지, 두 가지 감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오로지 하나의 감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 후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바탕은 여러가지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의 바탕에서 인체의 오감이 각각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 하나의 바탕을 우리는 마음..

깨달음의 서 2022.03.29

돈오돈수와 점오점수

돈오돈수와 점오점수 스님이나 불교인들한테서 더러 듣는 말 중에 하심 下心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깨달은 사람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제대로 깨닫지 못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를 등산에 비유한다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에게 하산하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하심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일반 대중이 아닌 견성 즉 깨달음의 문에 들어선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견성이란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비유할 수 있는 바, 고봉 등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하산 과정도 이에 못지않게 위험하다. 견성 상태인 기쁨의 고봉에 머물러 지내는 게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게 바로 하심 또는 점수이다. 불교에서는 보림이라는 용어로 이를 나타내는데, 용어와 ..

깨달음의 서 2022.03.09

저마다 내면에 보석이 있다

저마다 내면에 보석이 있다 천국도 지옥도 모두 내 안에 있다. 외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가, 다름 아닌 저마다의 내면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 각자의 내면을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면이란 눈에 보이는 유형적 신체의 내부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 즉 시공도 없는 무 無이기 때문이다. 무이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모든 것일 수 있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형상(이미지)이나 관념을 잡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무슨 느낌이라도 하나 잡으려고 애를 쓴다. 유형의 대상이든지 또는 무형의 대상에라도 의지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유형·무형의 어떤 것을 자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는 유형도 아니며 무형도 아닌 아무것도 없음(무)이다. 없음 안에 모든 게 들어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이..

깨달음의 서 2022.03.02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생각이 없는 상태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의식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습니다. 의식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며, 다만 의식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는 게 가능할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의식을 의식할 수는 없으며, 의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에서 180도쯤 깨닫고 나면, 산이 산이며 물이 물인 것은 그것이 본래 산과 물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그리 이름 붙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반쯤 깨달은 이들은, 산이 산이 아니며 물이 물이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여기서 180도 더 나아가 360도라는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달리 이름할 것 없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임을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산..

깨달음의 서 202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