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23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 신타 꽃 진 자리에 열매 맺는 것처럼 청춘이 꽃핀 뒤에 삶이 익어간다 아침은 아침대로 붉고 노을은 노을대로 아름답다 열매가 묻혀 씨앗이 되는 것처럼 노을은 다시 동녘에서 타오르며 태양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지구의 회전은 오늘도 멈춤이 없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같다고 느껴지지만 몸이란 오감의 대상인 외부 세계일 뿐 내면이 외려 오감을 감싸 안는다 보이지 않으며 다만 느낄 수 있는 내면이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로서 존재하며 진화한다 몸으로 꽃필 때가 있고 열매로 익어갈 때가 있으며 씨앗으로 몸을 버릴 때도 있지만 내면의 생명은 오늘도 타오르는 불씨

신작 詩 2022.11.25

남도로 가는 기차

남도로 가는 기차 / 신타 섬진강 변 어느 안개 자욱한 마을을 지난다 나로서는 모처럼의 일이라 서기 瑞氣 어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동네 사람에게는 불편한 일상이리라 어느 하나만이 아닌 내 느낌도 옳고 그들의 생각도 옳은 모두를 품은 삶이고 싶다 차창 밖 풍경은 이미 그러한데 내가 그렇지 못할 뿐이다 아침을 비추는 강물처럼 조용한 안개로 피어나리라 생겨났다 덧없이 사라질지라도 그조차 기적 같은 일 아니겠는가 섬진강이 흐르고 전라선 기차가 흐르고 내 마음도 따라 흐르는 곳

신작 詩 2022.11.20

너 없는 섬에서

너 없는 섬에서 / 신타 횡단보도 건너면서 어쩌다 올려다본 하늘 네 얼굴이 가득했다 놀라우면서도 부정하고픈 보고 싶은 마음과 애써 지우고 싶은 마음 길을 건너면서도 도리질 치는 아니야 이건 아니야 너 없는 섬에서 한 달만 살고 싶다 한 달 두 달 석 달 지나 파도에 묻힌 무인도이고 싶다 홀로 서는 시간 견디기 힘들지라도 아무도 없는 섬에서 너 아닌 나를 잊고 싶다

신작 詩 2022.11.09

섹스

섹스 / 신타 사랑하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사랑하는 마음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것처럼 그저 몸 가운데가 꼴려서 행하는 일상일지라도 사는 동안 때로는 밥을 먹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생기는 것처럼 애인과 헤어져 참아야 할 형편이라면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샘솟는다 암컷의 꽁무니만 쫓는 발정 난 수컷이 아니라 몸으로 자신의 마음을 남김없이 드러내고자 함이며 마음의 사랑 몸으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마음으로 더러는 돈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이다 추하게 보지 마라 정녕 추한 것은 추하게 보는 그 마음이며 서로가 좋아서 하는 섹스라면 그보다 성스러운 꽃은 없다

신작 詩 2022.11.04

열매처럼

열매처럼 / 신타 무아 無我란 내가 없다는 뜻 아닌 보이지 않을지라도 없는 내가 있다는 말이다 몸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도 있음의 세계인 것을 없음이란 혼자이기에 없음에서 있음을 향한 발걸음 몸으로 영원하지 않아도 무아로서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 생명은 썩어 없어지지 않는 흙에 묻혀도 새로운 싹이 트는 열매 지상에서의 삶이란 다름 아닌 어둠 속에서 자신이라는 빛을 찾는 일

신작 詩 2022.10.30

냉정과 열정

냉정과 열정 / 신타 함께할 때는 변덕스런 마음에 힘들었으나 헤어진 뒤로는 죽 끓는 그 마음이 좋을 줄이야 젊어서는 한 번 아니면 아니었겠지만 나이 들어서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으리라 땅끝까지 멀리 뒤따라갔어도 냉정했는데 한 달여 만에 다시 함께 여행하게 되는 반전 세상은 한 가지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게 아닌 모든 것 함께하기에 비로소 타오르는 불꽃이리라 온통 파랗다면 하늘도 땅도 없을 터 꽃과 함께하는 잎이 있어 향기처럼 빛나는 지금 여기

신작 詩 2022.10.29

지장보살

지장보살 / 신타 내가 지옥에서 나올 수 있다면 그도 스스로 나올 수 있으리니 나도 믿어야 되지만 남도 믿어야 되리라 너와 나 잠시 헤맬 수는 있어도 영원히 길을 잃을 수는 없는 일 스스로 성불하는 게 곧 중생 구제이거늘 중생을 다 구제하고 나서 그때 되어 성불할 거라는 지장보살이라는 상을 만들어 내고 성불을 바라는 가련한 중생이어라 중생을 믿지 못하는 보살이 부처는 어찌 믿는단 말인가

신작 詩 2022.10.28

가을 그리고 저녁

가을 그리고 저녁 / 신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 罷場]에 나오는 구절이다 시 쓰기 시작한 지 스무 해쯤 된 그동안 몇 번은 읽어보았을 시구 그러나 나는 잘난 놈이고 싶었다 밖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버티고자 애를 써왔다 적어도 생긴 얼굴은 그런대로 잘났다며 못생긴 모습은 눈에 띄는 것조차 꺼렸다 동네 복지관에서 저녁을 먹는데 유독 못생긴 사람이 눈에 띄는 게 싫어 시선을 피하는 나 자신을 자각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그의 얼굴 한참을 바라보다 신경림 시인의 시구가 다시금 떠올랐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제는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아닌 잘생긴 놈도 못생긴 놈도 아닌 가을이 물들어가는 나무처럼 어둠에 젖어 드는 저녁처럼 그 아래 흩어진 낙엽처럼

신작 詩 202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