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79

부처와 그리스도

부처와 그리스도 생각하고 기억하며 오감을 통해서 느끼는 그 무엇이 바로 나 즉 참나다. 이 몸뚱이가 내가 아니라 몸뚱이라는 수단 내지 도구를 통해서, 무형의 내가 생각하고 오감을 느끼며 기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뚱이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나 즉 우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는 감각 즉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촉감과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에 의해 한정되는 지구상에서의 삶을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무형의 영혼인 내가 선택한 것으로, 육체적이고 물질적이며 상대적인 한계를 지닌다. 한계가 있지만 모험 가득한 스릴 넘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사는 지구상에서의 육체적 삶이다. 고로 우리는 육체적 삶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즉 육체가 100년 ..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카카오 스토리(이하 카스)에 뜬, 6년 전 오늘 내가 올린 글을 보다가 친구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딱 1년 전인 작년 가을에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링크된 그녀의 카스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자신을 빼닮았다며 유난히 좋아했던 손녀 사진과 함께 그녀가 웃고 있다. 인터넷이 없던 우리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그녀의 사진을 보다가 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얼마쯤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리가 있기는 하는 걸까? 그녀는 지금 내 안에 있는데. 예전 같으면 사후 세계를 지하 어디쯤 있는 음습한 곳으로 상상했겠지만, 책과 인터넷을 통해서 임사체험에 관한 정보를 여러 번 접해본 나로서는 이제 정반대의 상상을 한다. 사후 세..

깨달음 속에서

신이시여! 내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과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양 쪽 전부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어느 한 쪽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 모든 게 나를 위해서 일어난다는 앎과 함께 신의 사랑으로 모든 일이 창조된다는 깨달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게 바로 중도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21. 7. 1. 신타

사랑과 애착

사랑과 애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에서 니체가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극복해서 위버멘쉬 또는 초인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몸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몸조차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들어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라는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형적인 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유형의 물질을 덜어내는 것이든 기억된 관념을 덜어내는 것이든 말이다. 아무리 우리가 빼고 덜어낸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재산이나 자신의 신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마음속에 가진 그것들에 대한 애..

신神의 사랑

신神의 사랑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 라는 명제는 인간은 왜 두려움을 느끼는가, 라는 주제로 대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거나 악한 게 아니라, 무언가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 즉 평온할 때 우리는 한없이 선하게 행동하지만, 반대로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음입니다.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인과 인디언 학살을 벌인 미국인 등 모든 학살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없애고자 하는 동기에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도 타인을 죽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동물의 생명까지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

무저항의 저항

무저항의 저항 나는 저항하고 싶다. 기존의 권위와 물리적인 억압에. 그리고 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제한하고 가두어버리는 나의 고정관념에도 저항하고 싶다. 인도의 성자 간디의 무저항 운동도 사실, 무저항이라기보다는 무저항의 저항이 아닐까 싶다. 내 소년 시절과 젊은 날엔 외부에 있다고 보이는 권위와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으며, 쉰 살이 넘어서부터는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 즉, 자기규정에서 벗어나고자 오랜 세월 사유하고 생각을 거듭해왔다. 그런지 십여 년이 지난 육십 대 초반쯤 하나의 깨우침이 일어났다. 외부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나의 내면이 변하는 것일 뿐이며, 외부에 있는 현실 세계는 늘 그대로라는 사실이 말이다. 외부 세계에 선이 있고 악이 있으며 정의와 불..

전쟁과 지휘관

얼마 전 가수 나훈아 씨가 공연하면서 했던 얘기 한번 해볼까요. 국난이 닥쳐도 국민과 백성이 나라를 지켰지 대통령이나 왕이 목숨 걸고 나가 싸운 적은 없지 않으냐고 목소리 높였습니다만, 그건 사실 나훈아 씨가 얘기하기 전에 어느 대학교수가 글로 쓴 것인데 아마도 나훈아 씨가 그 글을 보고 감동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장수 즉 지휘관이 죽으면 살아남은 군사는 오합지졸이 됩니다. 그러기에 병졸이 거의 몰살되어도 장수를 호위하여 도망치는 것입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조조도 부하 군사를 다 죽이고 겨우 제 몸만 도망친 적 몇 번 있었으나, 결국 조조가 살아남았기에 당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칼을 쓰던 시대에도 작은 전투가 아닌 큰 전쟁에서는, 장수가 앞서서 나가 싸우지는 않았..

나는 신의 사랑을 믿는다

나는 신의 사랑을 믿는다 나는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의 사랑을 믿는다. 인간을 재단하고 판단하며 형벌을 내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신 즉 사랑의 신을 믿을 뿐이다. 나는 신으로부터 받게 된다는 형벌을 믿지 않으며 다만 무조건적인 신의 사랑을 믿는다. 우리가 믿는 신은, 형벌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신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의 능력을 비교한다면 부모와 갓난아기 정도일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잘못을 같은 인간이 재단하고 판단하며 벌하는 것에 더하여, 신이 재판하고 형벌을 가한다는 상상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음이다. 갓난아기인 인간을 같은 인간도 아닌 신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재판하고 형벌을 가하기까지 한단 말인가? 더구나 신의 마음에 들면 천상에 있..

자기라는 보물찾기

자기라는 보물찾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감각. 감정. 생각. 의지 그리고 느낌 등등은 기억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다만 감각에서 느낌까지 이 모든 것들은 마치 두더지 게임에서처럼,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기억은 언제나 이 모든 것들과 함께, 동시에 나타났다가 동시에 사라집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앞에서 열거한 감각. 감정. 생각. 의지. 느낌 등과 함께, 항상 쌍으로 나타났다가는 쌍으로 사라집니다. 즉 기억은 그것들과 늘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반면, 감각에서 느낌까지는 번갈아 가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주체로, 감각 등을 객체로 봅니다. 다만 주객이 서로 분리된 게 아니라 늘 하나로 붙어 다니기 때문에 결국 주객이 따로 없는 셈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주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