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79

사랑은 난향처럼

사랑은 난향처럼 지금까지 내가 무언가 하지 못한 것은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무의식에서도 내가 정녕 하고 싶었다면, 돈을 비롯한 우주에 있는 모든 게 나를 도와서 이미 이루어졌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까지 생각하던 방식 그대로, 내가 하고 싶었어도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즉 무의식에서 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삶이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잘 이루어졌다면 지금 내 생각대로 살면 되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다면 사고방식을 바꿔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을 몰랐다면 모르지만, 알았다..

고미안용사

고미안용사 오늘 있었던 일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통지서를 보고는 동네 내과 의원에 대장암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간호사도 퇴근했는지 원장인 듯한 의사 혼자 있는데, 대장암 검사받으러 왔으니 용변 담는 통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여기저기 찾다가는 지금 없다며 나중에 다시 오란다. 한 달여 전인 작년 12월에도 예의 내과를 방문했으나 접수창구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대장암 검사가 많이 밀렸다며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서, 용변통이라도 지금 달라고 하니 그것도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돌아오면서 기분이 좀 상했었는데, 오늘 또 그러므로 짜증이 나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다시 오라고만 하면 됩니까? 라며 사과를 요구했으나 내과 원장은 오히려 내게 왜 언성을 높이냐며 따지고 달려..

절망이란 없다

절망이란 없다 절망이란, 회피의 대상이 아니며 극복의 대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희망 또는 기대를 포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포기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절망을 포기한다는 게 절망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절망의 늪으로 자꾸만 빠져들기 때문이다. 사실 절망의 늪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이 자꾸만 늪에 빠지는 것 즉 희망이 사라지는 것일 뿐이기는 하다. 즉 절망이란 실체가 없다. 희망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절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므로, 절망이 있다기보다는 희망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즉 희망이 있고 절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인 것이다...

나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깨달음이란, 저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일부러 지워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부러 기억을 지워버렸을까요? 예전 국민학교 시절 그러니까 요즘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게 되면 빠지지 않았던 보물찾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선착순이나 성적순이 아닌, 복불복의 묘미가 따로 있는 것이니까요. 보물찾기와 마찬가지로 일부러 숨기거나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기쁨도 매우 큽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영원한 시간 동안 언제나 자신을 알고 지내는 것도 좋지만,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렸다가 되찾는 모험을 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자신을 잊는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시간 동안 늘 강 같은 평화 속에서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평화를 까맣..

중도中道

중도中道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모든 걸 포기할 때까지,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없다.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한 뒤에도 우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모든 걸 포기했다고 하면서도 바로 그 포기하는 마음은 포기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게 바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것이요, 벼랑 끝에 매달린 나뭇가지를 잡은 한 손마저 놓는 것이며, 은산철벽을 마침내 뚫어버리는 것임에도 말이다. 모든 걸 포기하는 마음마저도 포기해야 정녕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모든 걸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포기 자체도 포기했을 때, 마치 허공에 붕 뜬 것처럼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날 수 있다. 6년간의 목숨을 건 수행 정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노가다와 빠루

노가다와 빠루 「노가다」의 일본 원어는 「도카타」이다. 그러니 노가다를 일본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일본 중시라고 할 수 있다. 포루투칼어인 「타바코」가 우리나라에서 담배가 된 것이나, 일본어인 「도카타」가 노가다로 변한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말의 어휘를 넓힐 필요가 있다. 외래어의 원천이 일본어라고 해서 이를 경원시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그토록 숭배했던 중국 문자인 한문과 오늘날의 영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가 외래어 없이 순수한 모습으로 형성된 경우는 없다. 얼마 전 국회에서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사태에서, 불법으로 문을 열기 위한 수단으로 「빠루」를 사용한 일이 있다. 예의 「빠루」가 일본말이라 하여 이를 「노루발못뽑이」,「쇠지레 장대」등 생소한 단어를 써서 언론에 보도된 ..

담배를 피워 물다

오늘은 내 마음속 흥분이 스스로도 느껴지는 날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발걸음이 저절로 마트로 향한다. 내 손으로 담배를 사는 일은 아마도 한 20여 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집에 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나서 이 글을 쓴다. 무슨 담배를 사야 할지 잘 몰라 금색으로 겉 포장이 된 '수 명작'이라는 글씨가 써진 것을 골랐다. 담배 맛이 괜찮다. 아까 식당에서 혼자 저녁 먹을 때, 머리로는 오늘 깨달은 내용 음미하며, 귀로는 이어폰으로 트로트 음악 들으면서, 입으로는 백년초 콩국수 먹다가 문득 든 생각 하나!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아쉽거나 억울한 일 하나 없을, 죽음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한 충만한 느낌! 담배라도 한 대 피워물어야 조금이라도 진정될 듯한 너무나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 ..

물처럼 바람처럼

그제는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렸는데 어제 낮부터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눈이 밤새 소리 없이 쌓이고, 모처럼 마음을 내본 아침 운동길에도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려워 얼마쯤 가다가 이내 되돌아왔네요. 되돌아오는 길에도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눈송이들의 집단적인 위세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두어 달 전쯤 내렸던 첫눈에 이어 올 겨울 들어 두 번째 눈이네요. 더구나 일어나 보니 밤새 쌓인 눈만이 아니라 아침에도 이렇게 펑펑 쏟아지는 눈을 온몸으로 맞아보는 건 정말 십 수년만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겨우내 포근한 날씨 때문에 꽝꽝 언 얼음판 위에서 벌어지는 송어축제도 이번 겨울엔 열리지 못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비 온 다음날에 이어 눈이 쏟아지는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창문을 ..

지리산 산행기 ㅡ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2

벽소령 대피소에서 새벽 3시경에 잠이 깨었다가 결국 6시 반쯤에 길을 나섰다. 아직은 산길이 어둡다. 바로 엊그제 서울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 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을 때 뭐 살 거 없나 하고 봤더니 헤드 랜턴이 눈에 띄어 자전거 타면서 앞에 헤드라이트 대신 쓰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샀는데 그게 지금 산행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것조차 신의 배려일까?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혼자만의 길은 7시쯤 되어서야 비로소 사방이 조금씩 밝아진다. 얼마쯤 더 가다보니 뒤에 젊은 남녀 바퀴벌레 한 쌍이 따라붙으며 묻기를 벽소령에서 왔느냔다. 그렇다고 하며 요즘 단식중이라 일찍 출발했다고 대답하며 그들에게 길을 비켜준다. 벌써부터 좀 지치기 시작한다. 세석대피소는 아직 멀었는데. . . 까마득한 급경사 계단길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