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변명 김석기 이제 확실히 알았다 널 만나기 싫은 이유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무와 나무 꽃과 꽃인 우리 둘 만나고 나면 너와 나 힘들고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사랑의 매도 자주 맞으면 흉터가 되지 않겠니? 詩-그리고 또 2013.03.22
읍면동 읍면동 김석기 먼 도시가 아닌 가까운 시골에 산다는 게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다 삼천리보다는 삼천동이라 말하고 싶었으며 금수군 강산면이 아닌 금수시 강산동에서 살고 싶었던 멀리 우뚝 솟은 산보다 가까이 네모난 아파트가 우람하고 굽이치며 흐르는 강보다 곧고 반듯한 아스팔트가 시원하게 다가오던 시절이 있었다 아파트보다 시골집이 부럽고 동사무소보다 면사무소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제는 오늘도 반갑군 또오면 어떠리 산 3번지에서 나는 살고 싶다 詩-그리고 또 2013.03.22
자연 자연 김석기 가로등 함께 단풍진 나뭇잎 사람이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는가 가로등 낙엽 지면 하늘도, 허공도사람도 가을이나니 스스로 존재하는 모두가 자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詩-그리고 또 2012.11.21
담배를 생각하다 담배를 생각하다 김석기 왜 피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고 안 피면, 무슨 낙으로 사느냐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이유로 피는지 나도 모를 때 있으며 안 피면 세상 살아가기 힘들 때도 더러 있다 오랜 세월 가장의 상징이었건만 이제는 시대의 죄인이 된 비 오는 날 거리에 서서 담배 피우는 사내 바라보며 담배를 왜 피울까? 그리고 어떻게 안 필 수 있을까? 하는 상념에 젖어본다 시대가 선악을 구분하고 사람이 상벌을 가릴 뿐이다 詩-그리고 또 2012.11.07
옷걸이 옷걸이 김석기 옷의 기능이야 보온을 위하고 가리고 싶은 곳 가리는 것이지만 이름이나 얼굴과 마찬가지로 옷이 때로는 나의 표상일 때가 있다 이름으로 얼굴을 떠올리고 떠올린 얼굴로 나를 기억하듯 사람들은 때때로 옷 입은 모습으로 나를 기억한다 옷이 나이고 내가 옷걸이인 것이다 詩-그리고 또 2012.10.11
봄날의 풍경 봄날의 풍경 김석기 햇볕도 졸고 있는 봄날 오후 벚꽃잎 하나씩 둘씩 사뿐사뿐 소풍을 간다 초롱초롱 눈망울 사철나무 새싹과 놀고 싶어서이다 꽃잎과 새싹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연분홍 편지지 위에 초록빛 글씨로 쓴, 봄을 기다리며 써 두었던 시를 읽어 준다 옆에서 가만 듣던 개나리.. 詩-그리고 또 2012.10.09
苦海 고해 苦海 고해 김석기 백년삼만육천일 불급승가반일한 (세상에서 백 년을 산다 해도 절에서 반나절 한가하게 산 것에 미치지 못한다) 웃기고 자빠졌네... 삶이라는 苦海가 곧 스승이며 自然이 곧 스승이거늘 스승은 없고 불상과 은사 스님이라는 우상만 있는 절에서 무엇으로 깨닫는다는 말인가? 선생과 제자가 모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놀이일 뿐 눈앞에도 내면에도 금빛 불상과 은사 스님의 호통소리만 가득한데 스스로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채찍이 없으니 무엇으로 말을 달릴까? 오히려 승가삼만육천일 불급세상반평생인가 하노라 (절에서 백 년을 산다 해도 세상에서의 반평생 삶에 미치지 못한다) 詩-그리고 또 2012.10.01
가을, 가벼운 가을, 가벼운 김석기 막상 닥치면 여름은 늘 새롭고 가을은 허수아비처럼 가볍다 지날 때는 힘겨웠던 지나고 나면 잊혀지는 여름은 늘 낯설고 바람처럼 가을이 스치고 지나간다 여름이 밤늦도록 보채도 겨울이 새벽부터 찾아와도 잠을 자듯 아쉬울 게 없다는 듯 가을은 늘 풍경처럼 가볍다 詩-그리고 또 2012.09.23
훈련소 면회 정경(情景) 훈련소 면회 정경(情景) 김석기 반가움 미뤄두고 부모님께 신고하는 자식 모습 보며 눈물짓는 어머니와 마주 서서 뿌듯하게 경례 받는 아버지 여기저기 구호소리 줄줄이 이어지네. 내 자식이 고된 훈련 견디기나 했을는지 이런저런 근심 걱정 마음속에 하시면서 철조망 높이 쳐진 훈련소.. 詩-그리고 또 2012.07.10
지금도 그러하다 지금도 그러하다 김석기 지금은 섬마다 파도처럼 철썩이는 사랑이 벼랑 끝 바위 전설 되어 새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봄마다 치마처럼 살랑대는 자유가 관념의 굴레 채찍 아래 나뒹굴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詩-그리고 또 201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