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24

인연

인연 신타 그때 그곳에서 그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가을 낙엽처럼 물듭니다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만나지 못한 것도 인연이겠지요 푸른 잎새도 아름답지만 낙엽 지는 헤어짐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도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다만 푸른 색의 인연을 우리가 더 바라는 것이며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과 낙엽 지는 만남을 바라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찾고 있습니다 파란 낙엽이 아닌 함께 단풍으로 물들어 갈 인연을

신작 詩 2020.11.04

신에게 고하노니

신에게 고하노니 신타 신이 인간을 두렵게 한다면 그건 신이 아니라 사탄이거나 악마일 뿐이다 적어도 신이라면 인간 모두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조차 품에 품어안아야 한다 신이란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끔찍한 벌을 가한다면 그게 신이기나 할까? 얼마나 못났으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만 사랑할까? 신은커녕 정치를 하는 인간들조차 믿고 따르지 않는다 하여 국민을 처벌하는 일이 없는데 말이다 바람과도 같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없다 신은 선한 자의 가슴뿐만 아니라 악한 자의 가슴에도 편재한다 신은 선한 행위도 지켜보며 악한 행위도 지켜본다 무소부재한 존재라고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생각은 달리 하는 게 보통의 우..

신작 詩 2020.11.04

무소의 뿔

무소의 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노동자 인권운동가의 말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우리가 사는 이유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거나 먹기 위해서 사는 것 중에서 어느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 존엄하게 살기 위해서라는 거대한 담론은 예전에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나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니 개돼지처럼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고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스스로 존엄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존엄하게 사는 삶이란 내가 선택하는 삶인 것이다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쟁취해야 진정 존엄한 삶을 향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동무하며 걸어가지만 길은 어차피 혼자서 걷는다 하나가 되어 걷는 게..

신작 詩 2020.11.04

나와 모두

나와 모두 신타 - 마스크 착용 나와 모두의 생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 라는 표어에서처럼 「모두」를 우리는, 나를 제외한 타인이거나 대상으로 인식한다 모두란 대상이 아닌 주체임에도, 내가 아닌 남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래서 '모두' 앞에 굳이 '나와'를 넣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또는 「모두」는 대상이 아닌, 나를 포함한 주체를 가리킨다 내가 곧 우리 모두이며 우리 모두가 곧 나인 것이다

신작 詩 2020.11.03

흘러내리는 기쁨

흘러내리는 기쁨 신타 두 뺨 위로 흘러내리면서도 어깨가 들썩이지 않는 것은 기쁨의 눈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쩌다 기쁨의 눈물 흘리는 순간 있지 아니한가 비록 혼자만의 사랑이지만 웃음 띤 그녀 모습 저만치서 어느새 다가오고 있으므로 그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두 뺨 위로 흘러내리는 기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내가 미리 단정하는 것일 뿐 누구도 그리 말하지 않는다 나를 알지 못하는 그녀조차 내 곁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그녀가 누굴까 궁금하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귀띔 하나 살아가며 가슴이 뛰는 순간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랑의 기쁨을 전하는 장미

신작 詩 2020.10.28

기억이라는 카메라

기억이라는 카메라 신타 또 하루가 지나 새로운 아침입니다 마치 방송국 카메라의 촬영이 시작된 듯 오감으로의 영상은 물론이고 생각과 감정까지도 촬영되며 언제든 재생과 편집이 가능합니다 카메라와 카메라 감독이 합체된,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가장 최신형 인공지능(자연지능) 카메라입니다 카메라의 소프트웨어가 날마다 업데이트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드웨어도 날마다 업데이트되지만 수명은 대략 100년 안팎입니다 나의 이름은 「기억」이며 수많은 기능이 내장된 카메라입니다 지금 이 글도 내가 쓰고 읽고 있으니까요 나는 웃을 줄도 알고 울기도 합니다 기쁨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카메라 스위치를 스스로 끄고 잠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아침이면 새로운 우주에서 또다시 촬영을 시작합니다 다큐도 ..

신작 詩 2020.10.25

장마

장마 신타 구월 들어서도 연이어 내리는 비 지겹기에 그를 사랑하리라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이유 없이 받아들이리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든 무조건 그를 받아들이리라 내가 미리 판단하지 않는 한 모든 건 그저 그런 것일 뿐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든 늘 나와 함께 하는 동반자 어쩌면 내 몸일 수도 있다 모습이 다를 뿐인 내 몸 그렇기에 몸은 물을 마시고 빗물로 크는 식물과 동물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으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8월에 이어 9월에도 하염없이 내리는 비 나 자신을 보는 듯 다만 바라볼 뿐이다

신작 詩 2020.10.25

흔들리지 마

흔들리지 마 신타 잘 풀릴지 안 풀릴지 무엇도 염려하지 마 잘 풀려도 좋은 일 안 풀려도 좋은 일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고 산 것일 뿐 모든 게 우리 뜻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 뿐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빠질 수 없고 이 세상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는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진실 나는 너를 믿노니 나는 너를 아노니 혼자서 밤새 염려치 않아도 모두가 가진 사랑의 힘으로 우리의 소망 모두 이루어짐을 나는 나를 아노니 나는 나를 믿노니 흔들리지 마 염려하지 마 내 사랑 그대여! 내 사랑하는 그대여!

신작 詩 2020.10.25

유리그릇

유리그릇 신타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와 함께 쌓는 사랑의 모래성은 석양에 유리처럼 빛나고 금빛 모래처럼 반짝인다 어렵사리 입성한 그녀의 보금자리 하룻밤을 보낸 뒤 마지막 성문은 결국 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 라고 인사를 하는데 내 허락을 받아야 해, 라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사이로 그녀의 불안이 밀려온다 아무렴 여전히 유리그릇 같은 우리 사랑 내가 어찌 깨버릴 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그녀가 들고 있는 유리그릇을 땅에 떨어뜨려 박살을 내겠는가 떨리는 두 손에서 식탁 위에 놓일 때까지 식탁 위에서 마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기다리리라 기다림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되게 하리라

신작 詩 2020.10.25

아라비아 숫자

아라비아 숫자 신타 숫자야! 고맙다 동화 속 신비로 가득한 이름조차 아름다운 아라비아 낙타가 사막에 줄을 긋고 야자수 잎 하늘 덮으며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지하철 7호선 3번 출구 고속도로 옆으로 이어지는 가을 들판 바라보며 새로움을 여행하던 내가 고속 터미널 지하에서부터 문자로 된 미로를 더듬어 3번 출구를 따라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고마운 숫자야! 요술램프 연기처럼 태어나 온 세상 가득한 0에서 9까지 네 변신 덕분에 우리 이렇게 서로 만나는구나 지하철 7호선 상봉역 3번 출구

신작 詩 202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