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詩 324

나비처럼

나비처럼 신타 햇살 가득한 가을날이면 식은 몸은 길을 나선다 밤새 젖은 날개를 아침 햇살에 말리는 한 마리 나비처럼 밖으로 나가 따가운 햇볕을 느낀다 차가워진 마음도 몸과 함께 용광로 쇳물처럼 한 줄기 되어 흐른다 우리 삶이 꿈을 꾸는 것이라든지 장자의 호접몽 얘기든지 간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일 뿐이다 스스로 자신을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 선하거나 악하거나 옳거나 그르다며 오른팔로 왼팔을 자르고 있을 뿐이다 안팎이 없고 오직 하나인데 둘로 나누고 셋으로 가르고 있음이다 내가 있지만 없는 세상과 내가 없으면서도 있는 세상! 전자는 꿈을 깬 장자가 사는 세상이고 후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 또 다른 장자가 사는 세상이다 천 개의 장소에서 천 가지 모습으로 천의 장자가 살고 있다 해도 장자인 나는 언제나 ..

신작 詩 2020.10.21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신타 생각지도 않게 뜬금없이 인연이 나타났어요 세상이 그런가 봐요 애타게 찾아다닐 땐 냉정하더니만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막걸리 한병의 인연으로 그녀와 나는 언제라도 되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건넜어요 사랑도 사람의 일인지라 다시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중입니다 물에 빠질 듯 빠지지 않는 징검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사람의 일이 다 그런 것 아닌가요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제 갈 길이 있을 테니까요

신작 詩 2020.10.15

사랑의 힘

사랑의 힘 신타 하루 이틀 밤을 지새운 번민의 끝자락 헤어지기로 작정했다 더는 그를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증거가 있지 아니한가 이젠 혼자이고 싶다는 그럴듯한 이유 내세워 이별을 통보했다 그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를 그리 사랑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물어볼 것도 없이 스스로 단정했던 사실을 하루 만에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유치한 짓이라는 생각이 뒷덜미를 잡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은 탁월했다 굳이 전화를 안 해도 되는 몇 자 툭툭 두드려 놓으면 제 알아서 배달되는 세상이어서 좋다 10여 분쯤 지나니 답장도 온다 보라! 나의 유치함이 아니라 그의 뻔뻔함을 명확한 근거자료를 들이대며 청문회장에 앉혀놓고 그를 추궁했으나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다 분명 근거가 있는데도 보라! 거짓이 거짓을 낳고 있음을 그러나 ..

신작 詩 2020.10.15

하나로서의 사랑

하나로서의 사랑 / 김신타 괴롭지 않다고 해도 괴로운 건 서로가 사랑했었기 때문일까? 생각할 누군가가 있음에 나도 한동안은 일상이 기쁨이었다 그러나 잠시의 기쁨은 그녀가 혼자 있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속절없이 강둑이 터져버렸다 논밭은 남김없이 물에 잠기고 온 동네 사람 망연한 모습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은 아니건만 어찌할 바 모르고 바라보는 건 그래도 미련이 남은 때문일까? 기쁨이 사라진 때문일까? 외려 무에서 무로 돌아간 기쁨일까? 슬픔과 기쁨, 둘이 아니라지만 슬픔은 슬픔, 기쁨은 기쁨대로 나누어 체험할 수 있음이 바로 하나로서의 우리 사랑이리라 슬픔과 기쁨이 하나가 아니라 홀로 선 둘이 만나 하나가 되듯 괴로움도 하나의 사랑이리라

신작 詩 2020.10.13

테스 동생에게

테스 동생에게 신타 자네의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다가 새로 산 물감처럼 빠레트에 질질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없어 길거리에 서서 편지를 쓰오 어쩌면 나는 친구 자네를 테스형이라 부르고 싶소 자네 형을 모독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친구가 테스형으로 읽히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지만 인간이 아닌 인간 몸이 그러하며 생각하는 동물이 아닌 생각하는 물질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오 약한 자의 간담을 샅샅이 핧아간 바람* 주근깨처럼 핏방울이 튀겨진 낡은 수첩* 기쁨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물질인 몸으로 슬픔과 고통도 함께 느끼는 것 아니겠소 가을 하늘 올려다보며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오 친구의 시를 통해 알게 된 자칭 테스 동생 자네를 나는 테스형이라 부르오 테스형! 테스형! 소크라테..

신작 詩 2020.10.11

코스모스

코스모스 신타 마음속에 코스모스는 늘 피어있다 다만 가을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가을을 기억하는 것일 뿐 흔들리지 않는 내가 코스모스 따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나이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음에도 오히려 내가 모든 것 속에 갖혀 있다 그들이 가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갖혀 있다 아직 미명이다 코스모스는 늘 피어있으며 가을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는 가을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신작 詩 2020.09.25

하늘

하늘 신타 술 마시러 갈 때 드문드문 떠있던 별이 한 잔 마시고 나와 집을 향해 걷다가 빗방울이 듣길래 고개 들어 쳐다보니 하늘에 별은 커녕 구름으로 가득하다. 내 눈에 보이는 머리 위 하늘이 우주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임을 나이 예순이 넘은 오늘에서야 드디어 저곳이 그리 넓은 곳이 아님을 알게 되다.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얼마나 좁은지 저 좁은 하늘을 무한하다고 착각했던 내 관념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술 한잔이 문득 나를 깨닫게 한다.

신작 詩 2020.09.11

소망

소망 신타 유례없이 긴 장마에 폭염에 온 세상이 시끄럽더니 어느덧 가을 바지 깃 사이로 찬 바람이 들고 따스한 차가 좋은 아침입니다 코로나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지금도 우릴 조심스럽게 하며 날씨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만 계절이 가고 오는 것과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다양함 모두가 창조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두가 사랑의 선물입니다 시끄러움도 지겨움도 아닌 적당하길 바라던 때 있었지만 이제는 흩어진 그 모두를 적당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모든 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니까요 옳다는 기준이 없을 때라야 우리에게 모든 게 다 옳습니다 기준을 두고 아무리 옮겨도 제 자리 찾을 수 없습니다 내면의 기준을 없앴을 때 그곳이 곧 제 자리입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듯 없애면 비로소 드러납니다 바라..

신작 詩 202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