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깨달음 346

밤비 내리는 쓸쓸함에 대하여

밤비 내리는 쓸쓸함에 대하여 신타 시월 중순의 가을 밤비 내리는 소리가 차다 생각은 해와 별을 넘나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가을이라 불리는 계절 밤비 내리는 소리는 왜 나를 쓸쓸하게 하는가 왜 나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잦아드는 빗소리에 왜 나는 허전함을 느끼는가 빗소리가 이어지기를 왜 나는 바라고 있는가 우주에 비하여 먼지보다 작은 몸뚱이가 아닌 우주를 품는 무형의 존재임을 왜 우리는 깨닫기 어려운가 밤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쓸쓸함에 대하여 시를 쓰는 내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임을 왜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가 보이는 몸뚱이가 아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쓸쓸함을 느끼는 것임을 왜 우리는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가

詩-깨달음 2021.10.16

무형의 실상

무형의 실상 신타 남과 대비되는 내가 생각하고 말하며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믿음이 무의식중에도 있었다 남과 대비되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또한 모든 일을 행한다는. 나라고 할 게 없다는 종교에서의 높은 가르침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내가 있는데. 한편으로 나라는 건 몸으로 된 유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이라는 자각, 내 몸이 내면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존재한다는 깨달음. 나는 어디에도 머물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이 몸뚱이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라니 내가 있을 곳은 어디란 말인가 몸 안팎의 우주도 아닌 시간도 공간도 없는. 또한 내가 존재한다는 믿음 생각 속의 관념일 뿐이다 지금까지 흔들린 적 없었던 뿌리 깊은 믿음일지라도 남과 대비되는 또는 비교되는..

詩-깨달음 2021.09.29

진리

진리 신타 모든 것이 착각이다 어차피 생각이란 나만의 것 고로 모든 생각은 저마다의 착각이며 우리는 이를 주관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은 주관이다 주관 속에 객관이 있을 뿐 주관을 벗어난 객관이란 있을 수 없다 다수의 주관을 객관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 또한 주관 속의 객관 아니던가 착각이든 생각이든 주관이든 객관이든 우리는 주관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주관 속에서 객관을 논할 수 있음이다 고로 진리는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다 주관이 모여서 객관이 되지만 주관이란 늘 변하는 것 따라서 '모든 게 진리다'와 '진리란 없다'가 동시에 진리다

詩-깨달음 2021.09.29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신타 정의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무소불위의 폭군이 아니라 사랑의 이름으로 포용하는 웃음 띤 선한 이웃이 되리라 오직 그 하나만 믿고 순종해야 하는 종 또는 하인을 사랑하는 신이 아니라 나를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인간이 되리라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 나를 위해서 일어난 것이며 내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또한 나를 위해서 지금 일어나는 것이리니 범사에 감사하리라 나와 이웃과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랑으로 감싸 안으리라

詩-깨달음 2021.09.29

소유의 패러다임

소유의 패러다임 신타 등산이나 여행 가고자 할 때면 아무렇게나 둘러매던 배낭 돈 주고 산 것이기에 타인으로부터 내 것임을 인정받았기에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소유로 여겼다 넣을 게 많을 땐 조금 더 컸으면, 적을 땐 조금 더 아담했으면 그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곤 했으나 내가 누구의 소유가 아니듯 그도 내 소유가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사랑으로 히말라야 같은 고봉은 산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등산 배낭도 지금까지 그가 허용했기에 쓸 수 있었던 것임을 나는 소유에 대한 패러다임의 혁명을 느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듯 배낭도 세상에 존재하며 이 세상 무엇도 누구의 소유가 아닌 모두가 홀로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를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며 그에..

詩-깨달음 2021.09.23

패러다임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 / 신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 시인의 시구를 보는 순간 터진 웃음은 잠시 후 통곡으로 변했다 스스로 못난 놈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 참으로 오랜만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유연하면서도 금강 金剛과 같은 가치관 내면에 세우고자 애를 썼던 내 청춘은 폭풍 같은 열정보다는 우울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서른이 지나고 또다시 서른이 지난 즈음 모든 걸 포기한 그곳에는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과 함께 히말라야 정상에서의 하산이 시작되었다 더는 추구할 게 없는 여정이지만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오를 때와 다를 바 하나 없다 모든 게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순 지동설이 체득되는 게 아니듯 나의 깨달음은 새로운 화두로 이어졌다 ..

詩-깨달음 2021.09.16

아이처럼 살기

아이처럼 살기 신타 몸은 따로여서 자유로우나 바탕은 하나여서 얽히고설킨 너와 나,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배가 고프면 내가 먹어야 하지만 배가 부르면 남도 생각할 줄 아는 미리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내일과 일 년 후를 대비한다 해도 십 년 후 백 년 후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나 혼자 모든 걸 걱정하기보다 신의 사랑 안에서 걱정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어른의 삶 살아가리라

詩-깨달음 2021.09.15

모정

모정 신타 나 어릴 땐 모조리 정자라고 했는데 타향 객지에선 모나게 지은 정자라는 뜻으로 모정이라고 부른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처음엔 낯설더니 한 삼 년 지나고 나니 인제 입에 붙는다 나한테 내 생각이 옳은 것처럼 그에게는 그의 생각이 옳음을 서른 고개 넘고 나서 다시 한 삼십 년 지나고 나니 이제사 겨우 깨닫는다 내게 옳은 것일 뿐 그에게는 그의 옳음이 있다는 사실 모정이 낯설게 들리다가 이제는 입에 붙는 것과 같다 내 고향 부여 떠나 이리저리 떠돌던 몸 춘향골 남원에서 지리산 뱀사골 계곡 돌아 요천*수에 발 담그고 나니 세월이 흘러서인지 때가 되어서인지 '없음'인 내가 곧 '영원한 있음'이라는 '텅 빈 침묵'이 곧 '나'라는 깨달음 *요천 - 남원을 가로질러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

詩-깨달음 2021.09.06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 신타 기차는 왜 열두 시 서른 분이나 십이 시 삼십 분이 아닌 열두 시 삼십 분에 출발하는지 나이는 왜 서른 살이라고도 하고 삼십 세라고도 하는지를 난 알 수 없어요 세월이 흐르고 흰옷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가을의 결실이 바로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황금물결 출렁이는 들녘이거나 저녁놀에 물드는 가을바람이 아닐까 싶네요 스스로 잊어버린 다음 기억을 되찾는 기쁨 느끼고자 오늘도 나를 찾아 방황하는 한 줄기 바람처럼

詩-깨달음 2021.06.23

평안

평안 / 신타 저물녘 빗속을 운전하며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시동 끄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들을 때, 평안이 내게 음악처럼 머문다 오십 중반을 넘겨도 여전히 빗속을 달리고 있을 때, 오늘의 수고가 오늘을 버틸 뿐 내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 불안이 차창 밖 빗물처럼 번진다 어둠과 함께 불안이 잠들고 나면 비바람은 어제의 기억이 되고 또 다른 오늘이 파랗게 열린다 하루의 수고로 오늘을 감당할 수만 있어도 평안은 행복과 함께 언제나 그 자리다 내가 그들 곁을 떠나 파랑새를 찾아 헤매도는 것일 뿐 그들이 내 곁을 떠난 적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詩-깨달음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