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또는 수필 92

물처럼 바람처럼

그제는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렸는데 어제 낮부터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던 눈이 밤새 소리 없이 쌓이고, 모처럼 마음을 내본 아침 운동길에도 쏟아지는 눈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려워 얼마쯤 가다가 이내 되돌아왔네요. 되돌아오는 길에도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눈송이들의 집단적인 위세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두어 달 전쯤 내렸던 첫눈에 이어 올 겨울 들어 두 번째 눈이네요. 더구나 일어나 보니 밤새 쌓인 눈만이 아니라 아침에도 이렇게 펑펑 쏟아지는 눈을 온몸으로 맞아보는 건 정말 십 수년만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겨우내 포근한 날씨 때문에 꽝꽝 언 얼음판 위에서 벌어지는 송어축제도 이번 겨울엔 열리지 못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비 온 다음날에 이어 눈이 쏟아지는 날씨는 참으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창문을 ..

지리산 산행기 ㅡ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2

벽소령 대피소에서 새벽 3시경에 잠이 깨었다가 결국 6시 반쯤에 길을 나섰다. 아직은 산길이 어둡다. 바로 엊그제 서울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에 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을 때 뭐 살 거 없나 하고 봤더니 헤드 랜턴이 눈에 띄어 자전거 타면서 앞에 헤드라이트 대신 쓰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샀는데 그게 지금 산행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것조차 신의 배려일까?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혼자만의 길은 7시쯤 되어서야 비로소 사방이 조금씩 밝아진다. 얼마쯤 더 가다보니 뒤에 젊은 남녀 바퀴벌레 한 쌍이 따라붙으며 묻기를 벽소령에서 왔느냔다. 그렇다고 하며 요즘 단식중이라 일찍 출발했다고 대답하며 그들에게 길을 비켜준다. 벌써부터 좀 지치기 시작한다. 세석대피소는 아직 멀었는데. . . 까마득한 급경사 계단길도 한..

지리산 산행기 ㅡ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어제는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검찰개혁 시위에 참여하고 집에 내려오니 밤 11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것저것 하다가 새벽 2시 넘어서 잤나? 그리고는 오늘 아침 6시쯤 잠에서 깨어 이것저것 하다가 7시 못되어 집을 나섰다. 시외터미날 정류장에서 뱀사골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뱀사골 입구에 8시 50분쯤에 도착하여 산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거의 평길이고 뱀사골 계곡 따라 데크로드가 설처되어 있어 걷기에 어려움이 없다. 여름보다는 수량이 많이 줄었지만 뱀사골 계곡은 역시 멋지다. 이윽고 지리산 본령 중의 하나인 화개재를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화개재를 지나 어제 예약한 세석 대피소로 가야 하는데 밥도 안먹고 (다이어트를 위해 요즘 내멋대로 단식 중) 계속 걷는데도 연하천 대피소를 지나 가다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