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공 空과 내어 맡김

신타나 2026. 1. 25. 14:18

공 空과 내어 맡김


우리는 본래 아무런 능력도 없고 개성도 없는, 내면이 텅 빈 껍데기 같은 존재이다. 그런 텅 빈 내면에 신성이 들어 있으며, 내면에 있는 신성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다. 무슨 능력을 발휘하느냐고? 심장이 뛰는 것을 비롯해 신체의 모든 기관을 관장하는 게 바로 신성의 능력이다. 누가 제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는 말처럼, 누가 우리 몸속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겠는가? 다름 아닌 신성인 것이다. 신성이 없다면 우리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빈 껍데기인 우리 인간의 영성에 신성이 들어와 생명을 불어넣었으며, 역시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몸과 마음이 탄생하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지금 영성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영성이 함께하면서 우리 인간에게는 인간성이라고도 불리는 개성이 점점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인간성(개성)이 곧 에고를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며, 형성된 에고가 몸·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진짜 주인은 텅 빈 영성 안에 있는 신성임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에고한테만 매달리는 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에고한테 매달리기 때문에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있음이다. 실제로는 신성의 능력임에도 우리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에고에 매달리기 때문에 때때로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깨닫고자 애쓰게 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래서 종교에서 가르치는 내려놓음과 내맡김의 수행을 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깨달은 스승을 찾아가 배우고자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또 하나의 방편을 얘기하고자 한다. 참을 수 없는 목마름에 힘들어하는 구도자들에게,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텅 비워야 한다. 상대적인 인간 앞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신 앞에서 말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경전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인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의 가르침인 무아 無我와도 일맥상통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의 해석처럼 '날마다 죽음을 각오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 앞에서 자기를 스스로 죽여 없앤다'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신 앞에서 자기 자신을 텅 비우는 것이다.

신 앞에서 자기 자신을 텅 비운 상태가 바로 공 空이며 내어 맡김이다. 우리 인간의 본래 모습이 바로 텅 빈 껍데기와 같은 상태이므로, 우리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신 앞에서 자기를 텅 비웠을 때 즉 신 앞에서 참으로 겸허해졌을 때, 우리는 신성이 내재함을 의식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신성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쓸 수 있었던 사도 바울의 능력이, 그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바로 신성의 능력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능력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날마다 신 앞에서 자기를 죽여 텅 비워냈기에, 텅 빈 그 자리에 신성이 역사할 수 있었음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날마다 신 앞에서 자신을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스스로 죽여 없애야 즉 텅 비워 신에게 내맡겨야 한다. 이게 바로 공이자 무아이고 내어 맡김이다. 인간인 내가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그 자리에 내 안에 있는 신성이 역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없다는 말은, 내가 무엇을 한다는 의식이 없음을 뜻한다. 내가 행하는 게 아니라, 신성이 행한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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