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서

내면 의식

신타나 2026. 2. 1. 00:13

내면 의식


우리는 평소 내면에 있는 나 즉 '내 안의 나'를 의식하는 게 아니라, 밖에 있는 나를 의식하고 있음이다. 이게 바로 의식이 내면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 뜻하는 바이다. 우리의 의식은 내면에 있는 나 즉 참나 또는 신을 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나 또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회적인 나를 늘 생각하고 있음이다.

남이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과 사회적인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닌, 신이자 참나인 내 안의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갖지 못하는 게 대부분 우리의 일상이다. 하긴 내 안에 신이 있고 참나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니, 다른 것을 말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 안에 신이 있고 참나가 있지 않다면, 누가 또는 무엇이 밤이면 잠이 오게 하고 또 아침에는 잠에서 깨게 할까? 우리 몸이 생리적으로 그렇다고? 그럼 생리적인 현상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것도 원래부터 그렇다고 할 참인가? 그렇다면 원래부터 있는 그건 누가 만들었을까?

이처럼 궁극적으로 파고 들다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신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걸 아는 존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음이다. 우리는 그것을 신, 절대, 근원, 창조주 등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신적인 존재와 우리 자신이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적인 존재를 마음속에서 또는 현실에서 저 앞에 두고 예배와 기도를 하고 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이게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적인 존재는 어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음이다. 신적인 존재는 우리 저마다의 내면에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신적인 존재를 의식할 수 있음은, 우리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식물이나 광물 등도 자의식은 가지고 있을지라도, 신에 대한 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동식물 등 다른 존재들과 똑같이 자의식 속에 빠져 지낼 게 아니라, 우리 저마다의 내면에 있는 신 의식 속에 빠져 지내볼 일이다. 우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다 큰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계에서 벗어나, 한계가 없는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부 세상을 바라보며 자의식 속에서만 살아갈 게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며 신적인 존재와 함께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부디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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