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78

나는 거울

나는 거울 / 신타 유리에 은판을 덧대어 거울을 만든다고 한다 유리엔 형상이 담기지 않지만 거울은 모든 형상을 담아낸다 뒷면이 막힌 유리가 거울의 형상이라면 형상에 성질이 배어있을 뿐 유리는 있어도 거울은 없다 모든 걸 담아 비추는 게 거울의 성질이자 작용이며 없지만 있을 수밖에 없는 작용이 곧 거울의 성질이다 살과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의 몸을 만든다고 한다 몸엔 기억이 담기지 않지만 나는 모든 기억을 담고 있다 생기 넘치는 몸뚱이가 나를 둘러싼 형상이라면 형상에 본질이 배어있을 뿐 나는 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기억 담아내는 게 나의 본질이자 작용이지만 없음이자 동시에 있음인 작용이 곧 나의 본질이다 거울이라고 이름하는 것일 뿐 유리는 있어도 거울은 없으며 몸은 있어도 나는 있지 않은 본질..

詩-깨달음 2022.01.18

좋은 엄마

좋은 엄마 / 신타 유행가처럼 좋은 엄마가 있고 그렇지 않은 엄마 있는 게 아닌 그냥 엄마가 있을 뿐이죠 내게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에게 계산적인 사랑이 아닌 그저 헌신적인 엄마이길 바라던 적도 있었습니다 남자다운 모습과 마마보이 내게 모든 걸 기대했던 엄마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던 내 청춘은 우울 그 자체였죠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답니다 방황 속에서도 내 갈 길 어렵사리 찾아내었습니다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한 엄마이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헌신적이든 계산적이든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이죠

신작 詩 2022.01.17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옆구리가 붙은 샴 쌍둥이]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 / 신타 가만히 들어보면 숨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돌아보면 숨을 쉬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반응을 하곤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코에 나는 냄새에 따라 입안에서의 맛에 따라 몸에 닿는 촉감에 따라 의식되는 기억에 따라 그리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들리는 소리와 말의 의미에 따라 우리는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헛소리를 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귓가에 총알이 스치고 가까이에서 비명소리가 들려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말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 하러 두꺼운 사전 뒤적이며 말을 배우고 글을 깨우친단 말인가 모자라는 깨우침이며 어리석은 가르침일 뿐이다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는 ..

詩-깨달음 2022.01.15

메기

메기 / 신타 미꾸라지 양식장에는 아귀 같은 메기가 있어야 진흙 속에 힘껏 처박혀 숨고 마릿수가 줄 것 같지만 오히려 쫓기면서 몸피가 미끈해진단다 내 삶의 메기는 무엇일까 고해와 같은 삶이 아닐까 속절없는 세월이 아닐까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은 현실 도피를 꿈꾸게 했다 메기가 잠시 사라지는 때 권태가 그 자리를 메우는 쫓겨 다니는 삶이 아니면 지겨운 삶일 때도 있었다 가끔은 우울도 스며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때 모든 걸 포기할 때 있었다 그래도 절망만은 결단코 포기할 수 없었던 절벽에서 마지막 한 손은 놓지 못했다 메기처럼 다가오는 불안 이제는 거부하지 않으며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절망조차 포기하는 용기 남은 한 손마저 놓아버렸다 절망 대신 희망이 아니라 희망도 절망도 붙잡지 않는 상상 속의 절벽을 ..

詩-깨달음 2022.01.14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 / 신타 나를 서운하게 만든 사람도 나를 화나게 한 일일지라도 모두가 나를 위해서 일어난 나를 위한 일이었을 뿐이다 달리 이유는 없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내가 그렇게 깨닫는 것일 뿐 그래서 내가 평안한 것일 뿐 물론 당시엔 기분 나쁘지만 잊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십수 년에서 몇 개월 안으로 며칠에서 몇 시간 몇 분으로 쉽게 기분이 바뀌므로 서운하거나 화가 나거나 불안한 감정에 파묻혀 사는 내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비록 처음엔 계속되지만 세월이 가면 쉽게 사라지며 스스로 평안한 기분 속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이다

신작 詩 2022.01.13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 / 신타 빅뱅이란 바늘 끝 작은 점에서 일순간 우주로 변하는 대폭발 고로 우주의 시작은 점이 아니라 우주라고 불리는 입체인 것이다 잘라낼 수 없는 점과 선과 면이란 영(0)과 같은 개념일 뿐 점에서 면까지 모든 건 입체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 유클리드 기하학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란다 0(zero)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 그는 최상의 표현을 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점은 입체이자 점은 영임을 뜻한다 별을 바라보면서도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며 실재하는 모든 건 입체일 뿐이다 선에서 면과 입체까지 모든 게 점에서 시작되나 점과 선 그리고 면이란 실체가 아닌 이데아 크기가 작으면 점이며 거대하면 우주라고 하지만 점은 입체 안에서 0과 같..

詩-깨달음 2022.01.12

중도와 중심

중도와 중심 중도란 고정된 관념 덩어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고정된 관념이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서 자신의 관념을 옳고 합리적인 상태로 만든다 해도, 그건 중도가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공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 말은 마음 또는 다른 무엇인가를 내려놓는다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관념을 모두 부수어 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양변의 중심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양변과 중심을 모두 부수어 없앨 때, 그때가 바로 중도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변만을 생각해왔으나, 정녕 중요한 것은 중심을 부수어 없애는 것이다. 양변을 없애기는 오히려 쉽다. 문제는 중심이다. 자신 안에 있는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옳고 바..

깨달음의 서 2022.01.12

우주,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 나를 위해 존재하는 / 신타 맞은 편에 지나가는 사람 얼굴 왜 저렇게 생겼을까 하다가도 나를 위해서 저 모습이라는 생각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달라진다 가는 길을 막아놓은 차 왜 이리 세워놓았을까 짜증이 나다가도 나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라는 생각 거기 세워진 게 아무렇지 않다 모든 게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를 위해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할 일을 마친 셈이다 내면에서 바뀌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우주 곧 나인 것이다 내가 바뀔 때 내 앞의 현실까지 더불어 바뀌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詩-깨달음 2022.01.11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불교의 공 사상이나 도교의 노장사상 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진 글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두려움이 사라지며, 또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채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잠자고 배설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이다. 거기에 정신적인 욕구까지 더해서. 물론 두려움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자유를 느낄 수 있지만, 두려움을 없앤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없애고자 하는 대상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오히려 껴안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라는 게 없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며,..

詩-깨달음 2022.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