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詩, 수필) 88

다슬기탕

다슬기탕 김신타 느티나무 그늘진 아래 화분마다 쌓인 화석들 한때는 몸이었던 패각 한동안 집이었을 공간 안으로 꿈을 살찌우던 청동빛 핏물 우러나는 어느 시대 민초이기에 저토록 짙푸른 생인가 황산강 임경대보다 먼 세월이 담겨있을 눈물 *황산강 -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름 지었다는 임경대 옆을 지나 흐르는 낙동강의 별칭 (경남 양산시 원동면 소재) ㅡ 2015년 '민들레 문학' 상재 ㅡ

삼류

삼류 / 신타 아! 나도 오랫동안 일류가 되고자 했던 삼류였나니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였나니* 다른 삼류하고는 차원이 다른 생각하는 삼류라고 스스로 자부했나니 이제는 일류도 삼류도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있음이나니 눈에 보이는 무엇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각 그 자체이나니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가 아니라* 일류도 이류도 삼류도 모두 서로가 서로를 위한 도우미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나니 이제는 알고 있나니 *표 부분의 '위대하게 천박한 삼류' 와 '일류를 위한 영원한 들러리' 는 이재무 시인의 시 '삼류들'에서 인용

선구불장증

선구불장증 / 신타 장미만 보면 인생이 장밋빛이 될 것처럼 느껴지기에 바쁜 영농철에도 틈만 나면 장미 앞에서 서성거리게 된다는 그는 귀촌한 농부다 해마다 오월이면 그는 이른바 선구불장증이 재발한다 선천성 구제 불능성 장미 증후군으로 완치가 어려운 병이라고 스스로 말하나 그건 병이 아니라 붉고 흰 정열이 겨우내 닫힌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는 오월의 치유사인 것이다 나도 선구불장증을 앓고 싶다 앓고 나면 더욱 환해지는 봄이면 찾아오는 치유의 열병을 2015년, 월간 「문학바탕」 발표

지천명(知天命)

지천명(知天命) 김신타 잔돈 같은 삶에 짜증난 적 많지만 이제는 그게 내 삶인 걸, 하고 받아들인다 변색되지 않는 행복은 고액권 지폐에서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나만의 삶에서 오며 우리가 도착해야 할 곳은 등대가 아니라 항구인 것처럼 타인은 목적이 아니라 방향일 뿐이며 나는, 나를 목적으로 해야 하므로 *2015년 2월호 월간 「문학바탕」 발표시

청춘

청춘 / 김신타 시작은 있어도 지는 때는 없다 흔들리지 않는 주관의 탑 쌓으며 탑 주위에 담장을 세우지 않을 때, 타인의 얘기 들으면서 마음의 울타리 치지 않고 다만 그의 생각을 받아들일 때,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다 누구에게나 받아들인다는 게 동의한다는 건 아니므로 나이와 주름살, 그 무엇도 아니며 타인의 삶임에도 눈물로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지금 봄날인 것이다 수액처럼 차오르는 청춘은 가슴으로 피는 계절이므로 *2015년 2월호 월간 「문학바탕」 발표

씨앗은 나무의 전생이다

씨앗은 나무의 전생이다 김신타 내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나의 은인이다 설령 나를 넘어뜨릴지라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나에게 빛이다 설령 그것이 어둠일지라도 살다가 죽고, 새로 태어나는 저마다의 모습 보면서도 내가 아닌 남이 태어나고 내가 아닌 남이 죽는다는 생각은 오랜 가르침도 허무하게 여전히 껍데기만을 보고 있다 아기의 몸일지라도 노인이 태어나는 것이며 노인의 얼굴일지라도 아기로 돌아가는 것인데 어둠에서 빛을 느끼지 못하고 죽음에서 태어남을 보지 못하는, 피었다 지는 꽃은 모든 열매의 전생前生이다 설령 바람에 떨어질지라도 살면서 겪는 고락苦樂은 모든 삶의 꽃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