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58

본질과 실존

본질과 실존 ㅡ 실존은 추론이다 ㅡ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실존은 분명 본질에 앞서지만,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실존은 공허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중세 시대처럼, 실존을 부정하고 본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불교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실존하는 모든 대상을 환영이라거나 허상으로 보는 견해에도 이제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실존이란 하나의 추론에 해당한다. 환영이나 허상이 아닌 추론인 것이다. 우리가 실존 또는 존재에 대하여 단지 추론할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물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고 다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이라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칸트의 물자체가 무슨 뜻일까? 다름 아닌 실존을 다..

깨달음의 서 2021.11.18

지금 여기

지금 여기 날마다 장면이 새롭게 바뀌는 현실이라는 영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끊임이 없이 상영되고 있지만, 현재 역시 영원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연극 무대 (또는 스크린)이다. 우리의 삶이 끊기지 않는 현실인 것처럼, 우리의 의식(또는 생명) 역시 끊어지지 않는 현재이다. 우리에게 삶과 의식은 영원히 상영되는 영화인 동시에 무대인 셈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지금이자 여기일 수도 있음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스크린과 영화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체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영화를 볼 때처럼 스크린이라는 게 별도로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무대나 스크린에 해당하는 우리 의식도 영원하지만, 영화에 해당하는 우리 삶도 영..

깨달음의 서 2021.11.18

바람 부는 언덕

바람 부는 언덕 / 신타 집착이 아니라 집착하는 마음속 깊은 두려움의 동굴을 찾아야 한다 두려움이 남아있는 한 집착만을 없애려는 몸짓은 땀 흘린 후 샤워하는 것과 같다 언제라도 다시 끈적일 것이다 집착하는 마음이 느껴질 때 마음의 뒷면을 돌아다보라 깊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감춰진 그를 받아들여라 두려움의 연인이 되어라 세월 지나고 나면 내게 파도치는 바다가 아닌 꿈속의 바람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꿈속이 바로 비비고 올라설 수 있는 바람 부는 언덕이다

詩-깨달음 2021.11.16

보이는 길은 길이 아니다

보이는 길은 길이 아니다 / 신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일이 오늘 내가 가고 있는 길이다 캄캄한 미래란 없다 지레 눈을 감은 때문이다 보이는 길은 길이 아니다 혼자서 가야만 하는 삶의 길 스스로 내면을 향해 걷는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이끈다 함께 가는 길은 길이 아니다 더는 비빌 언덕조차 없어도 보이지 않는 내가 바로 나이며 외뿔처럼 가는 길이 나의 길이다

詩-깨달음 2021.11.16

깨달음의 소리

깨달음의 소리 생각에서 벗어난다거나 또는 생각을 끊는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거나 끊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자각하고 더는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일 뿐, 생각 자체에서 벗어나거나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 안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거나, 또는 자신의 주관이나 사상, 믿음 등이 옳다는 생각을 스스로 끊거나 버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주관. 사상. 믿음 등을 없애기는커녕, 자신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란 없다. 진리 또는 깨달음이란 밖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에 있는 판단기준인 주관. 사상. 믿음이라는 고정관념을 자각..

깨달음의 서 2021.11.15

사랑

사랑 신타 은행잎 노랗게 뒹구는 늦가을 가로수 길 걷던 여자, 남자에게 왜 그리 말을 하느냐며 새침하다 내가 뭘? 아까 화가 난 것처럼 말했잖아? 너무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마! 은행잎에 미안하지도 않아? 가로등 불빛 아래 은행잎 환하게 비치고 있다 여자는 남자에게 소중하게 끼워 넣은 책갈피 노란 은행잎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낙엽 같은 사랑이고자 한다

신의 사랑 방정식

신의 사랑 방정식 가난과 굶주림, 신체적 또는 정신적 폭력과 전쟁 그리고 지진이나 홍수·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하여, 죽거나 다치거나 거처할 곳을 잃는 등의 비극적 상황 앞에서, 선한 이웃인 우리는 신에게 따져 묻는다. "당신은 사랑의 존재라고 하면서 왜 가만히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신의 사랑은 거지에게 적선하듯 밥 한 그릇 주는 식이 아니다. 어린 자식에게 날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아다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시간이 걸리고 어렵더라도 물고기 잡는 법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스스로 잡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그리고 세상에 다 알려진 첫 번째 비밀은, 우리 인간이 물질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영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몸뚱이만을 자신으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우리는 유형의 몸뚱..

깨달음의 서 2021.11.12

합창

합창 신타 살다 보니 빗소리에 잠 못 드는 밤 있어라 공연히 잠 못 드는 날인데 기와 강판 두드리는 세찬 빗소리 더욱 그러하다 모든 시간은 지금을 향하며 공간 또한 여기뿐인데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나라는 게 몸일 뿐만 아니라 우주를 감싸는 무형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오늘도 몸의 안락을 추구하며 내일도 오늘 같은 마음이길 때때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진정 나는 무엇이던가 몸 마음의 안식과 영혼의 기쁨 누리고자 소리 높여 사랑을 노래하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합창이어라

詩-깨달음 2021.11.12

섭리

섭리 모든 존재가 신이라는 단 한 존재를 이루며 또한 공간이 여기라는 단 한 곳을 뜻하는 것이듯 모든 시간은 지금이라는 단 한 순간으로 모이고 있다. 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지금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게끔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인류 창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일들이 내가 지금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게끔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을 뿐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유형·무형의 우주와 신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인연에게.

잠언 2021.11.11